밤과 안개: 쇼아 (1)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79 회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Shoah(1985)쉰들러 리스트와 가장 대척점에 선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아홉 시간 30분짜리 대작으로서 그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만 이루어져 있다. 수용소 생존자들의 처절한 증언, 수용소 근처에 살았던 폴란드인들과의 대화(그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거침없이 반유대주의를 드러낸다), 나치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경험을 토로하는 전직 나치 장교를 찍은 몰래카메라,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역사가와의 인터뷰가 계속 이어진다. 그 외에는 아우슈비츠 정문의 모습, 혹은 어디론가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기차의 이미지 같은 것만이 가끔 인터뷰 사이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면서 그 당시의 참혹한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필름 자료를 전혀 쓰지 않은 것은 감독의 특별한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그는 다른 어느 감독 혹은 역사학자보다도 재연 불가능성의 문제에 민감하다. 그가 견지하고 있는 태도는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홀로코스트의 절대 공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옥의 이야기를 어찌 단순하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그토록 엄청난 사건이 존재했던 그 장소로 데리고 가는 것뿐이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례 중 하나인 아브라함 봄바Abraham Bomba의 증언을 보자. 유대인 절멸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한두 시간 만에 몇백 명씩 죽이고 소각하는 일을 계속해야 했던 나치의 입장에서 가장 크게 신경을 썼던 부분은 가스실로 가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조치하는 것이었다. 사실 한 시간 안에 자신이 죽어서 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나치는 전직 이발사들을 모아 대기실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깎는 척했다. 봄바가 일한 곳에는 여자들 몇백 명이 벌거벗은 채 밀려들어 오곤 했다. 그러면 이발사들이 짧은 시간 동안 대충 머리를 깎는 척하였다. 그러고는 옆방에서 소독을 하게 되어 있다고 속이고는 가스실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와 함께 일하던 동료는 기막힌 일을 경험한다. 바로 그의 아내와 여동생이 그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음의 방으로 들여보내기 전까지 그들과 가급적 오랜 시간(그래봐야 10여 분에 불과하지만) 머물렀던 것일 뿐…….

또 다른 생존자는 막사에서 차출되어 땅에 묻은 시체를 파내는 일을 했다. 나치는 사람들을 죽인 다음 구덩이에 집단 매장을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들을 도로 파내서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땅을 깊이 팔수록 더 오래전에 묻은 시체라 그런지 점점 얇아지고 부슬부슬 부스러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파낸 시체 중에 다름 아닌 아내의 시체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는 아내의 시체를 꺼내 옆에 누이고 곁에 서 있는 나치 병사에게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나치 병사는 차갑게 대꾸한다. “너는 일할 힘이 있으니까 아직 안 죽여.”

이 영화의 인터뷰 내용은 모두 채록되어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읽을 때에도 물론 독자들은 가슴 아프게 느끼겠지만, 화면으로 볼 경우 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 표정, 눈물, 한숨 등이 그대로 전달되어 이를 보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와 닿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인터뷰의 강점이다. 란츠만 감독이 11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총 350시간의 인터뷰를 한 것은 그 고난의 기억을 지켜내려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 영어본과 프랑스어본 두 가지가 있다. Claude Lanzmann, Shoah: An oral History of the Holocaust : The Complete Text of the Film, New York, 1985; Shoah, Préface de Simone de Beauvoir, Paris, 1985.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