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홀로코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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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회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묻게 만든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만 해도 유럽 전역에 1,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나, 1945년이 되면 이 중 6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처럼 잘살고 문화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수용소에 감금하고 조직적으로 살해한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수용소는 사람들 간에 고통을 나누고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성스러운 공동체가 결코 아니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싸웠고, “모두 절망적이고 잔인할 정도로 혼자였다”. 남이 죽어야 내가 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늘 삶과 죽음이 함께 있었다.

 

병동에서 선발이 있었다. 선발될 확률은 전 수용소 인원의 17퍼센트이고 환자 중에서는 30-50퍼센트다. 비르케나우 화장터 굴뚝에서는 열흘 전부터 연기가 나고 있다. 포즈난 게토에서 수송되어 올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게 틀림없다. (……) 10월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알몸으로 나온 우리들은 두 개의 문 사이를 몇 걸음에 달려 나가서 SS대원에게 카드를 넘기고 다시 숙소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SS대원은 두 행동이 이루어지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우리의 얼굴과 등을 한눈에 보고 각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게 하여 자기가 받은 카드를 오른쪽 남자에게, 혹은 왼쪽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게 우리들 각자의 죽음과 삶을 가르는 것이다. 3-4분 사이에 200명이 수용된 한 막사의 선발이 완료되고 오후에 12천 명이 수용된 전 수용소의 선발이 끝난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옷을 입는다. 아직은 아무도 자신의 운명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 모두들 제일 나이 많은 사람들, 제일 여윈 사람들, ‘무슬림(곧 화장장으로 끌려갈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 옆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카드가 왼쪽으로 갔다면 왼쪽이 선발되는 게 틀림없다.

침묵이 서서히 주변을 압도한다. 그때 나는 3층에 있는 침대에서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소리를 듣는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고 있다. 쿤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옆 침대의 그리스인, 스무 살 먹은 베포가 내일모레 가스실로 가게 되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베포 자신이 그것을 알고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작은 전등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쿤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우리를 전율케 한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 지옥을 온전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프리모 레비가 이야기하듯 생존자는 이미 거짓 증인이다. 학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단지 자기가 겪은 부분적인 경험만 증언할 수 있을 뿐이고, 결코 대학살의 실체를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다만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가공할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홀로코스트를 이미지로 재현하는 미학화는 이 사건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일견 이런 견해에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이미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자 텍스트보다도 더 강력한 영상의 힘이 우리의 기억과 상상을 지배한다.

수용소 생존자 중 한 명인 엘리 위젤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반드시 해야 하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보여줄 수 없는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또 어찌할 것인가? 실로 단순하지 않은 과제다.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 이 장의 일부는 무크지 디자인문화비평 6에 실린 바 있으며, 여기에서는 내용을 추가하는 등 글을 전면적으로 재편했다.

** 유대인 학살을 나타내는 말로 쇼아홀로코스트라는 두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쇼아는 히브리어로 재난을 뜻하며 홀로코스트는 희랍어에서 나온 말로 동물을 구워 신에게 드리는 희생을 뜻한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pp. 19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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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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