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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인간 진보를 위한 위대한 계획의 일부라 여겼다.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하면서도 그것이 단지 자본주의적 역동성의 발현일 뿐 아니라 유럽인들이 세계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행위로 둔갑시켰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서구인들은 본국에서라면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을 해외에서는 기꺼이 행하면서도 그들의 오만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저지르는 악에 대해 눈을 감았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은 제국주의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콘래드의 분신인 말로는 증기선을 타고 콩고 강을 거슬러 내륙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커츠라는 인물을 만난다. 아프리카의 깊숙한 내부에 자신의 장엄한 영지를 구축하고 엄청나게 많은 상아를 수집하여 쌓아두고 있는 이 인물은 위압적이고도 흉포한 제국주의 악의 표상이다. 그는 과학과 진보의 사절을 자처하며 아프리카로 들어왔지만 정글의 유혹에 빠져들었고, 자제를 모르는 욕망은 결국 그를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인·언론인·화가·과학자의 풍모를 지닌 이 위대한 인물은 결국 두개골로 자기 집을 장식하는 광인으로 변모한다. 주재소 가까이에 이르러 선상에서 말로가 망원경으로 커츠의 집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검고 반들반들하고 홀쭉하고 눈을 감은 그리고 하얀 치열을 보여주는 말라비틀어진 입술이 달린 인간의 머리”였다. 계몽의 빛을 안고 들어온 커츠는 결국 온통 어두운 공포에 사로잡힌다. 커츠가 고상한 감정에 충만하여 쓴 보고서는 모든 야만인을 절멸하라는 절규로 끝난다.
이 충격적이고 기괴하고 복잡한 소설은 콘래드가 콩고에서 8년 동안 겪은 경험의 산물이다. 커츠가 죽으면서 속삭이듯 한 말 “무서워라, 무서워라”는 무슨 의미였을까? 말로는 “커츠 자신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겪은 모험에 대해 내린 심판”이라고 해석하며, 이런 심판을 내린 커츠는 삶의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궁극적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서구는 도대체 어떤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오늘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또 다른 층위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 폴란드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작가가 보기에 벨기에의 저급한 제국주의 지배는 온통 사악하고 잔혹한 착취에 불과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훨씬 더 순수하고 인간적이며 효율적이고 심지어 신성하다. 반면 그가 그리는 흑인들은 아무 말을 못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주문을 외우고 있을 뿐 제대로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들로 그려져 있다. 총칼로 정복한 것을 결국 펜으로 추인한 셈이다. 서구인들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은 검은빛을 되비치는 듯하다.
*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이상옥 옮김, 민음사, 1998. 이 작품을 영화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 있다. 다만 영화 배경을 월남전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