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바투타의 주유천하周遊天下: 순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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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회

아부 압둘라 무하마드 이븐 압둘라 알 라와티 알 탄지 이븐 바투타(간략히 이븐 바투타Ibn Battuta라고 부른다)는 모로코 왕국의 이슬람 율법학자 가문에서 1304년에 태어난 학자이자 판관이자 여행자이다. 그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독실한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이슬람법을 공부하였다. 공부를 마친 그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의무인 메카 순례hajj 여행을 떠났다. 그의 나이 22세였던 그해는 서력으로 1325, 마르코 폴로가 죽은 다음 해였다.

원래 고향을 떠날 때에는 메카만 방문하고 올 예정이었지만 3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에 걸쳐 10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필시 그에게는 세상을 두루 알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했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븐 바투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역경과 죽을 고비들도 넘겼다. 하지만 당대 이슬람 세계의 거의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슬람 명소를 찾고 각지의 정치 지도자와 고승 대덕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인도, 중국, 아프리카의 이교도 지역까지 탐방했으니 가히 세계 최고의 여행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가 보고 온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 역마살 낀 무슬림 여행자의 기록을 통해 14세기 이슬람권과 그 주변 세계의 사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순례 여행

이븐 바투타 여행기(이하 여행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수일 선생이 서문에서 정리한 대로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25년에 걸친 동행東行으로, 북아프리카서아시아중앙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북경까지 다녀온 왕복 여행이다. 둘째는 2년간의 북행北行으로, 수도 페스를 출발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Nasr의 수도 그라나다까지 갔다가 귀향한 후 이어 모로코의 남부 도시 마라케시를 보고 온 여행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3년간의 남행南行으로, 페스에서 출발해 사하라사막을 횡단하고 아프리카 내륙까지 다녀온 왕복 여행이다.

그가 이처럼 광대한 지역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자신의 탁월한 능력도 있겠으나, 이슬람권이 코란을 기반으로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통합되어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코란에 이미 이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세계를 여행하라, 그리하여 신께서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보라(코란 29:20).” 학자와 상인들이 실제로 이 명령에 따라 여행을 많이 했으며, 또 그러다 보니 여행문학 장르가 무척이나 발달했다. 사실 이븐 바투타 역시 그 이전에 쓰인 많은 여행기를 참고하며 여행했고 또 자신의 여행기를 쓸 때에도 그 책들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여행자도 처음 여행을 떠날 때에는 두려움에 떠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겨우 튀니지에 도착했을 때의 일인데 열병에 걸려 몸은 아프고 반기는 사람 하나 없다 보니 서러움에 그만 눈물을 보였다.

 

도중에 나는 또 열병에 걸렸다. 몸은 지쳤으나 겁이 나서 말에서 내려 걸을 수는 없기에 말 등에서 떨어지지 않게 머리쓰개로 몸을 안장에 단단히 잡아매었다. (……) 누구 하나 나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하곤 모두가 생면부지生面不知이니까. 나는 서러운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어 끝내 흐느끼고 말았다. 그러나 내 사정을 측은히 여긴 성지 순례자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이처럼 모든 무슬림이 형제라는 의식이 이슬람권 문화의 특징이다. 이후 그는 대규모 순례단에 끼어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기독교도들의 공격과 비적 떼의 약탈이 극심했으므로 이렇게 움직이는 편이 안전했다. 그런데 머잖아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집단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카라반** 내에서 카지(qazi, 혹은 qadi, 이슬람법의 판관 겸 조언자)가 된 것이다. 샤리아(이슬람 성법聖法)에 정통한 학자였던 그는 여행 중에 이 지식을 가르치고 수행하며 부와 명예를 높여갔다. 이제 그의 여행 패턴은 이런 식이 되었다.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 우선 그곳의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서 몇 시간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지방 유지들을 만나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것들과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동시에 그곳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것이 다음 도시에 가면 유용하게 쓰이는 훌륭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이전 도시의 유명한 성직자의 소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항상 이런 방식이 통하지는 않으므로 때로는 순례객들이 머무는 호스텔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설들은 신심 깊은 이들이 희사하여 운용되는 곳이었다. 성지순례가 모든 무슬림의 의무사항이 되면서 이런 순례자 보호 시스템이 발달했으니, 이것이 이븐 바투타 같은 이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이슬람권의 인프라 역할을 했다. 마치 우리나라 스님들이 전국 각지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운수 행각을 하는 것과 유사하되, 그것이 거대한 세계 전체로 확대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서비스에 대한 밥값은 여행 중에 얻은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멀리 스페인부터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지식인들이 국경 없이 왕래하는 이런 방식은 당시의 열악한 교통통신 사정하에서 지식과 정보가 소통되는 훌륭한 체제였다.

이슬람법과 종교 원칙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유사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학식이 높은 여행자들은 때로 여행 중 들르는 곳에서 공직을 얻어 일하기도 한다. 이븐 바투타 역시 일부 지역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전해주는 정도를 넘어 직접 법을 집행하는 판관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인도 남쪽의 지바툴 마할 제도(현 몰디브 제도)에서 그가 이슬람법에 따라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라고 명령했더니 이 지방 사람들의 심성이 약한지라 현장에 있던 여러 사람이 기절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고결한 율법 학자로서 깨끗한 처신을 하며 여행했을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으니, 여행길에서 그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이다. 이미 여행 초기에 그는 튀니스(튀니지의 수도) 출신 순례객과 친하게 되어 그 딸과 결혼했으나, 다툼이 생기자 곧바로 파혼하고 다시 페스 출신 학자의 딸과 재혼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여행 중 많은 여자들과 잠깐씩 결혼 내지 동거를 했고, 여자 노예들을 얻어서 즐기다가 버리든지 팔아버리는 행태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만난 수많은 부인과 첩, 그리고 성적 즐거움의 대상이던 여자 노예 등에 대해 무심히 언급할 뿐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아마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굳이 자세히 적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단지 여행하는 지방의 관례에 따라 여성을 취했을 뿐이다.

1327, 그는 여행의 본래 목적지인 메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지의 교사, 판관, 성직자들을 만나고, 수준 높은 지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과연 메카는 이슬람세계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1년을 머문 후 그는 내친김에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때부터 그의 여행은 호스텔을 찾아가는 방식보다는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격상해서 주로 왕과 술탄, 귀족들을 상대했다.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는 궁정에 출입하면서 그곳의 생활, 의식, 음악 등을 잘 관찰해두었다가 다음번에 들르는 궁정에서 그런 내용을 전해주며 대접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수년간 페르시아, 콘스탄티노플,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궁정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 땅이 광대하다 보니 오히려 인구가 부족한 형편이다. 러시아 인구는 현재 14,300만 명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수이다. 더구나 1990년대부터 어려운 경제 사정과 어우러져 인구가 감소 추세를 보여 이대로 가면 조만간 러시아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었다. 2009년에 들어 인구 감소세는 진정되었고 그 후 미약하나마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 러시아사 일반에 대해서는 다음의 개설서가 유용하다. 니콜라스 V. 랴자놉스키 외, 러시아의 역사, 조호연 옮김, 까치,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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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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