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어두운 빛: 레오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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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회

▲레오폴드 2세

 

 

1872년 스탠리의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을 때 이것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지켜본 사람은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1835-1909, 재위 1865-1909)였다.*

벨기에는 기구한 운명의 나라였다. 오늘날의 벨기에라는 나라가 정식으로 세상에 출현한 것은 1830년이니 그야말로 유럽의 늦둥이 국가였다. 그때까지 이 나라는 언제나 다른 나라에 귀속된 땅으로 존재했었다. 근대 초까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실 소속의 주provinces로 편입되어 있다가 차례로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1815년에는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 프랑스가 두 번 다시 군사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이 나라 북쪽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을 합친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프랑스의 목을 옥죄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로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나 1830년 벨기에 주민들이 네덜란드의 지배에 저항해 독립을 선언했다. 왕국이 되려면 국왕이 필요하므로 급히 찾아낸 인물이 영국 왕실과 관련 있는 독일 왕족 출신 레오폴드 1세였다. 그는 유럽 대륙 내 최초로 철도 체계를 만들어내는 등 나름대로 벨기에의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 아들이 레오폴드 2세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국왕으로 등극해 벨기에를 통치했다.

신왕新王은 다른 데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식민지 팽창에는 큰 관심을 두고 연구를 거듭했다. 스페인의 세비야의 고문서 보관소에 직접 가서 스페인이 식민지 경영을 어떻게 했는지를 연구했고, 네덜란드의 자바 식민지 지배도 주목해서 보았다. 벨기에가 작은 나라인 만큼 그는 식민지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벨기에 국가 식민지를 원한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 소유의 식민지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벨기에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CEO와 같았다.

 


* 아담 호크쉴드, 레오폴드왕의 유령아프리카의 비극, 제국주의의 탐욕 그리고 저항에 관한 이야기, 이종인 옮김, 무우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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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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