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어두운 빛: 리빙스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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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회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목도한 현상 중 하나는 무슬림들과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주도하는 잔혹한 노예 무역이었다. 19세기에 강력한 아랍 지도자들이 아프리카의 동서 해안 양쪽에서 침투해 들어오면서 많은 부족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켰고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아 잔지바르, 페르시아, 마다가스카르,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플랜테이션들로 팔아넘겼다. 사실 그 이전 시기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에 침입해 들어와 천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인들을 아메리카 각지로 송출하는 대서양 노예 무역을 수행했었다. 또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북쪽 혹은 동쪽으로 팔아넘기는 지중해 노예 무역인도양 노예 무역역시 계속 이어졌었다. 그런데 19세기 초 유럽에서 그와 같은 비인간적인 노예 무역을 종식시키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영국을 필두로 노예 무역을 스스로 중단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그러더니 유럽인들은 마치 자신들은 역사상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듯 무슬림의 노예 무역을 거세게 비난했다. 리빙스턴 역시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동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잔인함을 폭로하는 데 바쳤다. 그의 잠베지와 그 지류들1865년에 출판되었을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사악한 무역을 끝장내야 한다는 명분에 동의했다. 무슬림이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노예 무역은 혐오스러운 일로 비쳤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대의명분은 상아와 고무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부를 차지하려는 더러운 탐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검은 대륙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문명의 빛을 비추자는 리빙스턴의 주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이면에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리빙스턴은 유럽의 자만심과 죄의식을 감추어주는 가리개 역할을 하고 말았다.

1866, 리빙스턴은 나일 강의 원류를 찾겠다며 다시 한번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내륙으로 들어간 이후 5년 동안 외부 세계와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다. 인도주의자라는 자자한 명성에 매혹적인 미스터리가 덧씌워졌다.

 


* 조이스 애플비, 가차없는 자본주의파괴와 혁신의 역사, 주경철안민석 옮김, 까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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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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