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여인: 상징적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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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회

처음부터 이 사건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마법의 요소들이 내재해 있었다. 레베이예가 고양이 흉내를 내서 주인 내외의 숙면을 방해하자 그들은 마녀의 하수인이 지붕 위에서 나쁜 마술을 행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신부를 불러 악령을 퇴치할까 하다가 고양이 사냥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고양이에게 상처를 가해서 마법을 완화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을 의미한다. 미신에 빠진 부르주아의 행위는 곧 두 악동에 의해 더욱 악용되었다. 자신들의 장난을 주인 내외가 오해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이자 이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들은 곧 마녀사냥을 연출했다. 그들은 여주인이 아끼는 고양이 그리즈를 때려잡음으로써 상징 차원에서 여주인을 마녀로 몰아갔다. 축제 때 고양이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 마녀사냥의 연출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 의미가 자명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안주인이 신부와 불장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실거리는 남편, 중년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젊은 연인이 얽힌 삼각관계를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베이예가 주관하고 다른 사람들이 거친 음악’(염소 소리)으로 호응하는 것은 전통적인 샤리바리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말하자면 이들은 사육제를 따라 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축제의 모의재판 형식을 빌려 고양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사형에 처함으로써 그동안 그들을 잘 먹이지도 않고 혹사시키며 자신들만 사치스럽게 살아온 주인 내외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동시에 그들의 부도덕성을 비난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상징 차원에서 부르주아의 법 질서를 조롱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우애로운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 인쇄소 직원들이 회식을 할 때 십장이 한 연설에서 그런 측면을 읽을 수 있다.

 

결코 동료들을 배신하지 말고 임금 기준을 유지할지어다. 한 노동자가 제시된 임금을 받아들이지 못해 인쇄소를 떠난다면 다른 사람들 누구도 그보다 낮은 임금으로 그 일을 맡지 말지어다. (……)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허용되니, 과음은 미덕이요 난봉은 젊은 날의 공적이요 부채는 기지의 표시요 무신앙은 성실성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곳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롭고 공화주의적 영역이다. 원하는 대로 살라. 그렇지만 정직한 인간이 될 것이요, 위선은 금물이다.

 

그들은 최소한 마음속으로는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과거의 조합(길드)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정부의 규제와 부르주아의 욕심에 의해 과거의 따뜻했던 공동체가 파괴되고 형제들의 결속과 우정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반응 중 하나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모욕하는 주인 내외를 호색한, 마녀라고 조롱하며 비판한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의식과 상징을 절묘하게 이용했다. 사실 그들을 고용한 주인을 공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드러나게 놀리면 곧바로 해고될 수 있으므로 그들의 불온한 의도를 표출하면서도 직접 알아차리지는 못할 정도로 놀려야 한다. 안주인은 자신이 아끼던 고양이가 죽어서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들이 그 이상의 심한 공격을 가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남편에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무감각한 주인이 그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이제 이들은 두고두고 이 놀이를 반복하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지배층에게 신나게 복수했지만, 이는 동시에 복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보여준다. 그들의 저항은 오직 상징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다른 의례와 축제가 그렇듯 그들의 저항적인 행위는 단지 미리 주어진 판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 실제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실컷 놀려먹고 낄낄거리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사육제가 지나면 다시 엄격한 질서가 지배하듯, 휴식 시간의 질펀한 놀이를 마치고 나면 다시 피곤한 노동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세상을 뒤집는다고 하지만, 오직 제한된 정도로만 세상을 뒤집어놓고 그 안에서만 노는 것은 마치 압력밥솥에서 김을 빼듯 갈등을 완화시켜 오히려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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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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