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여인: 고양이의 특별한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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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결코 재미있는 놀이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즐거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18세기 파리의 노동자들이 향유하던 문화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18세기 파리의 인쇄소는 결코 행복한 일터는 아니었다. 흔히 길드(동업조합)는 장인과 직인 그리고 그 아래 일하는 사람들이 화목하게 일하는 가정 같은 곳이라고 말해져왔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옛날이야기였고 18세기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직원들은 모두 모욕적인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장래 희망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노동자들은 언젠가 장인이 되어 번듯하게 자신의 인쇄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프랑스 정부였다. 1686년 정부 칙령으로 파리의 인쇄업 장인 수를 83명에서 36명으로 축소한 후 고정시켜버린 것이다. 직인의 숫자는 늘 300명을 훨씬 웃돌았으므로 결국 직인에서 장인으로 승격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장인들은 바쁠 때에는 무자격 노동자들을 임시 고용했다가 일감이 떨어지면 해고하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직인들의 처지는 더욱 나빠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하 말단인 견습공들의 열악한 처지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장인에게 밉보이면 바로 해고되어서, 1년만 버티어도 고참 소리를 듣는 형편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판에 오직 주인만 늦잠을 자고 고급 요리를 즐기고 애완동물을 길렀다. 부르주아로 올라선 장인과 하층 노동자 간의 사이가 갈수록 크게 벌어져갔다. 여기에 더해서 이 인쇄소의 주인 내외가 각자 바람피우고 있다는 것을 직원들은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고양이 죽이기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복수 행위였다. 이들이 주인집 고양이를 죽이게 된 데에는 물론 우연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 행위 이면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유럽에는 일시적으로 사회 질서가 뒤집어진 상황을 연출하는 축제와 의례의 전통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육제다.* 사육제 기간 중 민중들은 거의 폭동에 가까운 소란을 피우며 행진하고 광대극을 공연하거나 샤리바리charivari를 행했다. 샤리바리란 오쟁이 진 남편(,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아내를 둔 남편), 매 맞는 남편, 혹은 나이 차가 너무 큰 신혼부부 등 전통적인 규범과 질서에 어긋나 보이는 사람들을 공동체 주민들이 잔인하게 놀리는 민중 의례다. 이런 기회에 사람들은 억압적인 기존 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한다. 일시적이나마 세상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모한다. 광대극에서는 거지가 관리가 되고 창녀가 귀부인이 된다. 이렇게 뒤집어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마음껏 뛰놀고 즐기는 가운데, 때로 지배층에게 거친 항의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전도된 세계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격렬한 축제의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아쉽게도 다시 질서와 복종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육제가 끝나는 참회의 화요일에 짚으로 만든 인형인 사육제의 왕King of Carnival이 제의화祭儀化된 재판을 받고 처형됨으로써 뒤집혔던 세계는 문을 닫고 원래의 질서 잡힌 세상이 돌아온다.

흥미로운 점은 사육제뿐 아니라 각종 축제나 민속에서 흔히 고양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르고뉴 지방의 샤리바리에서는 특정 인물을 조롱하는 행위를 할 때 젊은이들이 돌아가며 고양이의 털을 뽑아 울게 만들었다. 624일 성요한 축제에도 고양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운 후 그 위를 뛰어넘고 춤을 추면서 불 속에 마법의 힘을 가진 물체를 던져 넣었다. 이렇게 하면 그해의 남은 기간 중에 화를 면하고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때 흔히 불 속에 고양이를 넣었다. 고양이를 괴롭히는 방식은 지방마다 다양해서, 파리지엥들은 고양이를 자루에 넣어 태웠고 생샤몽 사람들은 불붙인 고양이를 길거리에서 쫓아다니는가 하면 부르고뉴와 로렌 지역에서는 오월제(51일에 행하는 축제) 기둥에 고양이를 묶어놓고 춤을 추었다. 우리 눈에는 어디랄 것 없이 야만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런 행사를 하는 당사자들은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시행했다. 메스 지방의 경우 시의 유지들이 광장에 행진해 온 다음 정중한 자세로 장작에 불을 붙이면 군부대에서 응원 나온 소총수들이 고양이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이런 민속과 의례에서 자주 보이는 요소를 추출해보면 모닥불, 고양이 그리고 마녀사냥의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 부활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을 사순절四旬節이라 한다. 이 기간 동안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회고하며 단식과 속죄를 행한다. 사순절에 앞서 3일 동안 벌이는 축제가 사육제(謝肉祭, carniv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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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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