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계몽주의 시대의 사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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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그는 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하는 행동가의 삶을 살다가 문필가로 생을 마쳤다. 그는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많은 책을 읽었다. 결코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여러 지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수학이나 천문학 문제에 천착하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서적을 번역했고, 일리아드를 각색했으며, 시와 소설, 팸플릿, 과학 논문, 정치 철학 에세이 등을 썼다. 이 모든 것의 집적인 내 삶의 이야기는 자신이 몸으로 행했던 철학을 글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글을 씀으로써 그는 계몽주의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당대의 문필 공화국Republic of Letters’에 입성하여,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들이 교류하던 유명한 살롱에 들락거렸다. 1760년에는 페르네로 가서 볼테르를 만났고, 그 후에는 루소도 만났다. 그러나 이 대철학자들과의 만남에서 대단한 철학 작품이 도출된 것 같지는 않다. 볼테르는 서한에서 웃기는 인간을 만났다고 표현했다.

그는 분명 이성의 시대를 살다간 계몽주의의 아들이라 할 만하지만, 그것 역시 그의 모든 면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없다. 그는 마술사 노릇도 하고, 연금술도 수련했으며, 비정통의 치료에도 능했다(특히 성병 치료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자유석공회(프리메이슨)에 가입하여 이 세상 표면 뒤에 감추어진 진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는 지적이며 신비적인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특이한 지식인이었다.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를 한몸에 구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계몽주의가 원래 이성과 반이성을 동시에 포함해 가지고 있으며, 과학과 마술이 혼재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정한 자유인이었다. 그 어떤 권위 혹은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은 채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무엇보다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가 죽으며 남긴 말은 나는 철학자로 살았지만 기독교도로 죽는다J’ai vecu en philosophe, je meurt en Chrétien”였다. 그가 어떤 기독교도로 죽었는지는 알쏭달쏭하지만, 철학자로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분명 그는 새 시대를 알리는 강렬한 사랑의 철학으로 한세상을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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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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