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계몽주의 시대의 사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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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내 삶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지금까지 신화화된 카사노바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코모 카사노바는 172542일 연극배우인 가에타노 카사노바Gaetano Casanova와 자네타 파루시Zanetta Fa-russi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린 자코모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연약하지만 재능 있던 그는 15세에 삭발식을 하고 성직에 입문하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평생 성직자를 할 인물이 아니었다. 얼마 후 그는 큰 사건을 일으키고 성직에서 떠났다. 로마에 가서 교황 조카의 정부情婦를 건드렸다가 암살당할 뻔하고는 도주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전 생애 동안 계속되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평생 그는 밀라노, 베를린, , 제네바, 프라하, 브뤼셀, 암스테르담, 파리, 마드리드, 페테르부르크, 바르샤바, 리가, 런던을 비롯하여 100곳 이상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서,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다시 떠나곤 했다. 그의 생애를 요약할 때 우선 들 수 있는 큰 특징은 그는 움직이는 인간이며, 코즈모폴리턴이라는 것이다.

그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했다. 살아가는 동안 그가 했던 일들은 성직자 외에도 군인, 바이올린 연주자, 사서, 대사의 비서, 스파이 등 지극히 다양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종류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기회만 되면 도박장에서 게임을 했다. 그는 모든 노름을 다 잘했고, 사기도박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도박장에서 딴 돈으로 보석을 사서 여인의 환심을 사거나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에 사용했다. 그는 순발력이 워낙 뛰어난지라 순간적으로 좋은 기회를 잡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명사들 모임에 나갔다가 재정 문제가 화제가 되자 경제 전문가인 척하여 재정 적자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왕실 직영 로또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하고는 이 사업의 지분을 얻어냈다. 돈이 떨어지면 어음 사기를 치거나, 손에 가지고 있지도 않은 보석을 판매해서 돈을 구했다. 이처럼 운에 맡겨 돈을 기대하고 실제 가진 것보다 많은 돈을 펑펑 쓰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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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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