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내 삶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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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해 잘 이해하려면 그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Histoire de ma vie를 잘 분석해보아야 할 터인데, 사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 책이 그동안 원전 그대로 충실하게 출판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대한 재평가는 결국 그의 자서전 원고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카사노바가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1789년이었다. 그가 평생을 살았던 세계우리가 흔히 앙시앵레짐Ancien Régime이라 부르는 구체제는 무너져갔고, 그 자신도 나이가 드니 돈 없고 여자 없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여 겨우 발트슈타인Waldstein 백작의 호의로 보헤미아의 둑스Dux 성의 도서관 사서를 하고 있었다. 지옥 같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자서전 집필 과정은 그에게 한 번 더 삶을 사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그는 멋진 스타일에 화려하고 깊이 있는, 정확하고 철학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문체로 자신의 일생을 그려갔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모국어인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자신의 프랑스어 글쓰기가 문제점을 안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랑스어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프랑스어가 유럽 엘리트들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그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히고 싶었던 것이다.

초고를 쓰고 나서 곧바로 다시 검토 작업에 들어가 최종 원고를 완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망했다. 179864일의 일이다. 그가 남긴 원고는 3,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다. 자신이 직접 펜으로 쓴 깨끗한 글씨체가 돋보이는 원고는 그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원고를 처음 본 사람은 당시 카사노바를 돌보아주던 리뉴 공인데, 그의 소감은 “3분의 1은 웃게 만들고, 3분의 1은 꼴리게 만들고, 3분의 1은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과히 틀리지 않은 판단이라 하겠다.

카사노바가 죽을 때, 그의 옆에는 조카인 카를로 안졸리니Carlo Angiolini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업을 하는 드레스덴으로 이 원고를 가지고 갔다. 그가 죽자 아내 마리안네 아우구스트Marianne August는 이 원고를 라이프치히의 유명 출판사인 브록하우스Brockhaus사에 판매했다. 이 출판사는 1822-1828년 사이에 독일어 번역본을 출판했다가 이것이 성공을 거두자 프랑스어판도 출판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독어 번역본이나 프랑스어본 모두 원본 그대로 출판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순화시킨 일종의 각색본이었다. 1826-1838년에 파리에서 출판된 프랑스어본의 경우 드레스덴의 군사학교 교수인 장 라포르그Jean Laforgue가 손을 보았는데, 생기 없고 틀린 문장들로 되어 있는 데다가, 용기 있고 대담한 사고가 전개된 부분들은 모두 삭제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번역되어 오랫동안 이 책을 근거로 카사노바의 신화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1820년 이후 라이프치히 금고에 보존되어 있던 카사노바의 자서전이 원본 그대로 출판된 것은 1960년에 가서의 일이다. 브록하우스와 프랑스의 플롱Plon사 합작으로 출판된 이 책으로 인해 비로소 카사노바의 실제 면모가 처음 세상에 드러났다. 그 후 이 원고는 1993년 프랑스의 부켕Bouqin 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카사노바의 내 삶의 이야기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인 것은 두 번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를 있는 그대로 알게 된 것은 겨우 반세기 전의 일이다.

카사노바가 다시 인구에 회자된 것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이 20102, 이 원고를 구입하고 나서의 일이다. 도서관 측은 이 기회에 원고 전시, 관련 자료 수집, 성우들의 육성 낭독 등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카사노바의 원고는 곧바로 프랑스어 보고(寶庫,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로 분류되었다. 내 삶의 이야기는 연구와 편집 과정을 거쳐 2013년에 플레이아드판으로 출판되었다. 앞으로는 이것이 가장 정확한 판본이 될 것이며, 카사노바의 진솔한 모습은 이 책에 근거해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 역시 이 책을 저본으로 하고 있어 원본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국내 번역본의 일러두기에는 장 라포르그가 편집한 카사노바의 회고록을 영국의 소설가 아서 매켄Arthur Machen이 영어로 번역한 카사노바의 회고록(1894)을 조지 더닝 그리블이 1/4 분량으로 편집한 카사노바, 그의 생애와 추억(1929)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 밝히고 있다.

** Antoine de Baecque, ‘Casanova, homme des lumières’, L’His-toire, no. 369, 2011, pp.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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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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