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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가 유혹자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많은 문필가들이 그를 그런 식으로 묘사했는데, 거기에는 분명 경멸과 동경이 섞여 있다. 그의 자서전 중 우리말 번역본 『불멸의 유혹—카사노바 자서전』에 들어 있는 츠바이크의 서론이 대표적이다. 츠바이크는 희대의 탕아가 벌인 극적인 모험에 대해 찬탄하는 시각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카사노바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문학계에 우연히 뛰어든 이단자이다. 이 유명한 허풍선이가 창조적인 천재성의 신전에 자기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은 거의 없다. 상상력이 넘쳐나는 작가로서의 그의 위치는, 스스로 만들어낸 ‘생갈의 기사’라는 직위만큼이나 믿을 수 없다. (……) 귀족들 사이에서나 작가들 사이에서 그는 무위도식하는 식객에 불과했으며 불청객이었을 뿐이다.
영화화된 카사노바는 더욱이나 섹스 머신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예컨대 1976년에 나온 펠리니의 「카사노바」에 묘사된 주인공은 괴물 같은 성도착자에다가 거만한 성격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펠리니의 표현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기껏해야 ‘차가운 정액’이다. 이런 작품들에서 정형화된 카사노바는 저급하고 파렴치한 탕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카사노바는 ‘작가’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인물이며, 한낱 구경거리 정도로 간주되었다. 온 세상 사람이 모두 그의 연애 행각만 부각시키면서 인물의 깊이를 없애버린 셈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우선 카사노바는 기계적으로 여성을 꾀어 정복하고 변태적인 사랑을 하는 부류가 아니다. 그가 호색한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 전에 그는 문필가, 모험가, 지식인, 궁정인, 여행가, 마술사, 노름꾼으로서, 당대의 사회 질서를 조롱하고 그것을 뒤흔든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