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로빈스네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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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섬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바다 한가운데 떨어져 존재하는 외딴 세계인 섬은 통상의 법칙들에서 벗어난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며, 그래서 흔히 문학적 실험의 장소가 되곤 한다. 무인도라는 무대 속에 주인공을 집어넣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는 작품 중에는 물론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서 이 장르를 따로 로빈스네이드Robinsonade’라고 부른다.* 로빈슨 크루소가 살게 된 섬은 한편으로 인간의 손이 닿기 이전 태초의 순수함을 가진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지만, 동시에 지진과 해일, 태풍 등 가공할 자연의 힘이 인간의 노력을 일순간에 파괴시킬 수 있는 무섭고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자연 상태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그의 수중에 가지고 있거나 마음속에서 기억해내는 유럽 문명의 요소들을 하나씩 적용시켜보며 새롭게 점검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섬은 유럽의 타락을 경고하고 새롭게 갱신된 사회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낭만적 이상주의의 사고 실험 장소라 할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떠오르는 근대 유럽 문명의 중추인 영국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한다. 그들은 구 귀족의 오만이나 하층 프롤레타리아의 곤궁에서 자유로운 상태이며, 균형 잡힌 온건한 문화를 향유하면서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런 안온한 행복을 마다하고 먼 이역 땅으로 모험을 찾아 떠났다. 극한의 고통과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도 낯선 세계로 떠나는 이유를 디포는 신의 뜻으로 돌리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점은 유럽 부르주아 계층이 자신들의 성취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따져 묻는다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무인도에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문명의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자연 상태 혹은 야만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정말로 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산물을 이용하여 문명을 복원했다. 그에게는 도구, , , 잉크, 종이, 자석, 계측기, 나침반, 망원경, 해도, 성경, , 고양이가 있었고, 여기에 더해서 신앙과 과학 기술, 글 쓰는 능력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말하자면 유럽의 대표 선수로서 먼 이역의 낯선 자연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이야기는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을 그리는 동시에 한계에 대항하는 인간의 개선 노력을 살펴보는 드라마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그는 자주 공포에 떤다. 그런 고독의 순간에 그는 신의 섭리를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회개를 한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신을 원망하지만 결국은 엄청난 시련을 이겨내고 인간의 고귀함을 잃지 않은 것이 신의 보호 덕분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이처럼 인간에게 고난을 안겨주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이 세상에서 문명을 이루어나가라는 것이 신의 큰 뜻이라 믿는다. 이처럼 이 소설은 유럽 문명 전반에 대한 진지한 재고와 반성의 과정 끝에 유럽 중산층 문화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이야기이다.

이 점은 이방인 야만 민족과 조우하면서 거듭 확인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만나는 사람들은 문명인의 극단적 반대항인 식인종이며, 인종적으로 흑인이고, ‘베나막키신을 모시는 이교도다. 로빈슨 크루소가 이방인을 대하는 방식은 간단명료하다. 그가 간직해온 비장의 무기인 총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자기 문명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차 있는 그에게 인간 이하의 존재인 이방인들은 거리낌 없이 처치해도 좋은 대상일 뿐이다. 다만 그중 순한 인간 하나를 그의 하인으로 삼고,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금요일에 처음 집에 왔다고 금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식의 애완견 작명과 기본 철학이 같다).


 

*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2005, pp. 25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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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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