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공포와 야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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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바타비아호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탑승해 있었다. 탑승자 가운데 바스티안스라는 목사와 목사의 부인 그리고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둘째 딸 유딕은 21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살육이 자행되던 당시, 폭도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청혼하고 곧바로 약혼을 요구했다. 목사는 목숨을 부지하고 능욕을 피하는 길은 차라리 누군가에게 매여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를 허락했다. 실제로 목사 자신과 이 딸만 목숨을 구했을 뿐 다른 가족들은 살육의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폭도들은 손도끼를 휘두르고 몽둥이로 내리쳐 단 몇 분 만에 목사 가족을 살해한 다음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시체들을 집어 던졌다.

목사 가족의 살육을 계기로 그 전까지는 권력을 잡고 사람 수를 줄여 식량을 아낀다는 등 그나마 어떤 목적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제부터는 살인을 위한 살인, 거의 오락을 위한 살인으로 바뀌었다. 코르넬리스가 살인을 허락하는 것은 일종의 상이 되었다. 나이 어린 소년 얀 펠흐롬은 자기에게도 살인의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다가 아네켄이라는 여자를 죽이라는 허락을 받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몸이 왜소한 그는 혼자 힘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못했고 결국 다른 두 동료가 목 졸라 죽였다. 두 번째 기회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대로 희생자의 머리를 자르지 못하자 그는 안타까움에 흐느껴 울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탈을 썼다고 할 수 없었다. 문명이 해체되어갔다. 바스티안스 목사는 설교를 금지당했다. 종교를 장악한 것은 코르넬리스였다. 그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은 하느님이 심어준 것인데, 하느님이 사람 마음속에 나쁜 것을 집어넣어줄 리가 없다는 것이 교리의 내용이었다. 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죄가 아니며, 인간이 행하는 일은 죄가 될 수 없다는 코르넬리스의 주장은 명백한 이단 교리였다. 살인 행위를 저지르며 지옥의 불안을 느꼈을 폭도들에게는 이런 요설妖舌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폭도들은 모든 법과 규정을 무시했고, 예배의 의무에서 벗어나 신성 모독과 저주의 자유를 누렸다. 바스티안스 목사가 기도하자고 제안하면 사람들은 조롱하는 노래를 불렀다. 목사가 사람들을 하느님의 날개 밑으로데려다 달라고 기도하면 폭도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바다사자 지느러미를 가져와 날개처럼 흔들며 놀려댔다.

이론적으로는 이들이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서열이 만들어졌다. 선임하사인 돌 깨는 자피터스가 코르넬리스의 오른팔로 권력을 휘둘렀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사 여부를 결정지었지만 그들 자신이 직접 살인을 행하지는 않았다. 실제 잔혹한 살인 행위는 주로 저반크와 반 하이센이라는 인물이 담당했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자들은 스스로 총사령관, 부사령관 등의 직위를 만든 다음 거기에 맞는 제복을 만들어 입었다. 코르넬리스는 날마다 다른 옷, 비단 스타킹, 금 레이스가 달린 가터를 갈아입었고, 또한 그런 장식물들을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도 붙여서 시범을 보였다. 거기에다 그는 가장 믿을 만하고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른 추종자들에게 최고급의 빨간 모직물로 만든 두세 줄의 장식이 달린 옷을 주었다”. 기존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계급 질서가 들어섰다. 여기에 확실히 끼지 못한 사람들은 하층으로 떨어졌다. 예컨대 충성 서약서에 서명은 했지만 살인을 해본 적이 없는 열두 명은 철저히 무시당한 반면, 거의 스무 명을 살해한 얀 헨드릭스, 열두 명을 살해한 반 오스 같은 사람들은 총애를 받았다. 이들은 더 많은 식량 배급을 받았고, 젊은 여자들을 품을 수 있었다. 출항할 당시 선상에는 스무 명이 넘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은 여자는 일곱 명에 불과했다. 폭도들은 늙은 여자들은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젊은 여자들만 남겨두었는데, 그들 중에서 코르넬리스와 그의 부하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골랐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최소한 두세 명의 남자들을 상대했다. 여자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었던 크레이셔는 코르넬리스의 구애를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결국 그의 협박에 굴복하여 별수 없이 그의 정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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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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