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난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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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회

코르넬리스의 첫 번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을 네 군데 섬에 보내 대부분 죽게 만든 결과 이제 본섬이라 할 수 있는 바타비아호의 무덤에 남은 사람들은 130명 정도로 줄었다. 이제부터 할 일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시켜 이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난파 사고 직후 구성되었던 운영위원회부터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병사 한 명이 보급품 천막에 숨어 들어가 포도주를 훔쳐 포수砲手와 나누어 마신 사건이 일어나 이를 핑계로 삼았다. 코르넬리스는 두 사람 모두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른 위원들은 포도주를 훔친 사람은 몰라도 함께 마신 사람까지 사형시키는 데에는 반대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코르넬리스는 운영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자기 심복들로 운영위원회를 다시 구성했다. 전권을 잡은 코르넬리스는 거칠 것 없이 자신의 살해 계획을 밀어붙였다. 새 운영위원회는 두 사람을 곧바로 사형에 처했을 뿐 아니라,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근거 없이 고발하여 사형시켜버리는 일들을 자행했다. 사형 집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칼이 마치 버터처럼 몸으로 쑤욱 들어갔다며 자랑했다. 이후로는 재판 절차를 제대로 밟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살육이 이루어졌다. 이웃 섬들에 증원대를 파견한다고 속여 사람들을 뗏목에 태운 뒤 손발을 묶은 채로 바다에 던져 익사시키기도 하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숙소로 공격해 들어가 칼로 마구 찔러 죽였다.

사람들은 이제야 코르넬리스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폭도들보다 수적으로 더 많았지만 무기를 독점한 코르넬리스 일당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폭도의 편에 서야 했다. 코르넬리스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은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바다사자와 물새 고기 대신 저장육을 먹고 빗물이 아닌 포도주를 마셨다. 세상이 뒤집어진 것이다. 평생 억압받으며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만끽했다. 그들은 이전에 자신보다 우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보복당할 걱정 없이 마음껏 살해했다. 물론 그런 특권은 공짜가 아니었다. 일단 폭도의 편에 들어가면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는데, 그것은 코르넬리스가 지명하는 사람을 칼로 죽이는 일이었다. 식량도 아낄 겸 이들은 환자 천막에 들어가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목을 차례로 땄다. 7월 전반에만 이런 식으로 50명 가까이 살해해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제 90여 명으로 수가 줄었다.

한번 피 맛을 본 사람들은 점차 살인기계가 되어갔다. 그들은 이웃 섬 사람들도 제거하여 위험 요소를 없애기로 했다. 이웃 산호초 섬에는 아직 45명이 생존해 있었다. 코르넬리스는 부하들에게 산호초 섬으로 가서 남자와 어린아이는 다 죽이되 여자들은 당분간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굶주림에 시달려 힘이 빠진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 공격에서만 성인 남자 네 명과 소년 여섯 명이 죽었다. 그런 가운데 15세의 소년 헤리츠는 죽을래 아니면 살인에 동참할래?” 하는 질문에 기꺼이 살인에 동참하겠다고 의사 표시를 한 후 정말로 달아나던 다른 어린 소년을 붙들어 칼로 찔러 죽였다.

살인은 단순한 일상사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특이한 사례는 코르넬리스가 어린아이를 살해하려 한 일이다. 어머니와 함께 있던 아이가 계속 울어 잠을 설친 코르넬리스는 과거 약제사였던 경험을 살려 아이에게 독약을 만들어 먹이고는 아이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아이는 혼수상태에 빠졌을 뿐 죽지는 않았다. 실망한 그는 이를 드샹이라는 심약한 추종자를 시험할 기회로 삼았다. 드샹은 아이를 천막 밖으로 데리고 나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 아이는 코르넬리스가 유일하게 직접 살해를 시도한 사례였지만 그나마 다른 사람이 끝장을 냈으니, 결국 코르넬리스는 살인마들을 지휘하긴 했으나 정작 자신은 한 사람도 직접 죽이지는 않은 셈이다. 하여튼 이 아이가 105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섬에 사는 사람은 이제 60명 미만으로 줄었다. 그래도 살인은 계속되었다. 코르넬리스가 생각한 적정 인구는 45명 이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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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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