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난파 (2)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34 회

운명의 날인 162964일 새벽,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지점에서 바타비아호는 암초에 걸려 좌초됐다. 며칠 버티던 배는 결국 두 동강이 나서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고, 300명 가까운 생존자들은 주변의 작은 섬으로 피신했다. 이 섬은 나중에 바타비아호의 무덤Batavia’s Graveyard’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섬에는 무엇보다 마실 물이 없었고, 바다사자나 물새 외에 별다른 식량도 없었다. 우선 당장은 난파한 배에서 꺼내 오거나 바닷가에 떠내려온 물통과 식량으로 연명할 수 있지만, 이대로 가면 조만간 모두 죽음을 면할 수 없으리란 것은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선장과 대상인, 그리고 일부 승무원과 승객 등 48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바타비아호에 싣고 다니던 대형 보트를 타고 북쪽으로 탈출했다. 이들은 다른 희망이 없으므로 차라리 그들만이라도 원래 목적지인 자바 섬으로 항해해 간 다음, 그곳에서 구조선을 보낼 생각을 한 것이다. 방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망망대해에서 어림짐작으로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33일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까지 항해해 가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바타비아에서는 난파 지점에 구조선을 보내 그때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출하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무인도에서는 가공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섬에 남겨진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은 부상인인 코르넬리스였으므로, 그가 지휘자로 부상했다. 선장과 대상인이 함께 보트를 타고 떠난 것을 알게 된 그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현재의 무인도에 그대로 있으면 결국 모두 목숨을 잃을 터이므로 구조선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구조선이 도착하면 자신이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질 공산이 컸다. 대상인 펠사르트가 동인도 회사 본부에 도착하면 얼마 전 자신이 획책했던 선상 반란에 대해 보고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인도에 남은 사람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구조선이 도착하면 그 배를 탈취한 후 그동안 난파선에서 건져낸 재화를 가지고 먼 곳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 우선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가려내고 남은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리라 작정했다. 권력을 장악한 그는 자신의 천막 주변에 추종자들을 배치하고 무기와 물자를 통제했다. 그는 이 작은 섬의 왕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최우선 과제는 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병사들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는 해안에 밀려온 판자들로 작은 뗏목을 만들어 추종자들로 하여금 주변의 작은 섬들을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주변의 작은 섬들에서도 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주변 섬들에 물이 풍부하니 일부 사람들이 이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제일 기운이 좋은 병사들을 추려 주변 섬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다른 섬들에도 물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위버 헤이스나중에 저항 세력의 지휘자가 되는 인물이다를 비롯한 수십 명의 군인들을 또 다른 섬으로 보냈다. 물을 찾을 경우 연기를 피워 올려 신호를 보내면 그들을 구조하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코르넬리스의 속마음은 그들을 물이 나오지 않는 섬에 방치하여 목말라 죽게 하는 것이었다.


 

* 바타비아는 원래 네덜란드를 가리키는 고지명古地名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건설할 때 오늘날의 자카르타를 얻은 후 그곳을 바타비아로 명명했다. 선박의 이름도 우연히 바타비아호이고, 난파 장소도 그에 따라 바타비아호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바타비아라는 똑같은 이름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