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난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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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16281029,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 바타비아 호가 암스테르담 항을 떠났다.* 배수량이 1,200톤이고 이물에서 고물까지 길이가 48미터에 달하는 이 배는 당시 기준으로는 최대 규모에 속했다. 38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341명을 태우고 처녀 출항한 이 배의 목적지는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이었다. 17세기에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원거리 항해는 사고 위험이 아주 높았다. 특히 경도經度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항해 중인 배가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7개월을 항해한 후인 162964일 새벽, 전속력으로 항진하던 이 배는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해상에 위치한 하우트먼애브롤호스 제도의 암초에 부딪혔다. 300명에 이르는 생존자들은 물도 구하기 힘든 몇 개의 작은 무인도에 남겨졌다. 이제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난파

 

이 비극적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우선 항해 관련 업무를 전부 책임지는 선장 아드리안 야콥스가 있다. 두 번째 인물은 오퍼코프만(opperkoopman, 번역서를 따라 이 글에서는 대상인이라 부르기로 한다)인 프란시스코 펠사르트이다. 통상 바다에 나갔을 때는 선장이 선상에서 최고의 권한을 가지게 마련인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선박의 경우 교역 업무를 총괄하는 이 직책이 선장보다 상위 직급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온더코프만(onderkoopman, ‘부상인이라 부르기로 한다)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가 세 번째 인물이다. 마지막 인물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에 해당한다.

코르넬리스는 할렘 시 출신의 약제사로서,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했을 뿐 아니라 당시 가장 극렬한 이단으로 지탄받던 재세례파anabaptist의 분파에 참여했다가 체포를 피해 도피하는 중이었다. 불만이 가득하던 야콥스 선장과 의기투합한 코르넬리스는 선상 반란을 일으켜 선박과 화물을 탈취한 후 이국땅으로 도망가 살 궁리를 했다. 몇 명의 공모자들까지 모은 그들은 실제로 이 위험한 도박을 실행에 옮겼다. 여성 탑승객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고 신분이 높은 크레이셔를 밤중에 겁탈하여 일부러 소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면 대상인인 펠사르트가 선상 질서를 잡기 위해 선원들에 대해 엄격한 징계를 내릴 것이고, 그때 두 사람은 불만을 품은 선원들을 끌어들여 선상 지휘권을 빼앗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이 음모는 뜻하지 않은 일 때문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크레이셔에게 폭력을 가하는 소동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마침 펠사르트가 병에 걸려 드러눕는 바람에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간 것이다. 펠사르트는 야콥스 선장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일을 잘못 처리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사건을 일단 덮어두고 항해를 계속했다. 코르넬리스 일당으로서는 사형당하느냐 한몫 잡아 먼 곳으로 튀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모험을 감행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갈등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적으로 잠재해 있다가 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폭발하게 된다.


 

* Mike Dash, Batavia’s Graveyard, Crown Publishers, New York, 2002 ; 우리말 번역본은 마이크 대쉬, 미친 항해바타비아호 좌초사건, 김성준·김주식 옮김, 혜안, 2012. 이 글에서는 번역서를 인용하되 인명과 지명, 혹은 일부 용어 중 발음 규칙에 현저히 어긋나는 것은 수정하였다. 예컨대 번역서의 펠사아르트’ ‘워우터 로스’ ‘호다는 각각 펠사르트Pelsaert’ ‘와우터 로스Wouter Loos’ ‘하우다Gouda’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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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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