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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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진즈부르그의 이 책은 흔히 미시사micro-history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고 섬세하게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거시사macro-history와는 어떻게 다른가?

거시사는 이 세상의 큰 줄기를 과학적으로 파악하여 전체적인 세계상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설명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연구하고 그렇게 얻은 성과들을 재료로 삼아 하나의 큰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거시사는 세계의 큰 흐름을 짚어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망원경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삶은 통계분석과 거대서사 속에 편입될 정도로 기계적이지 않으며, 이 세상은 법칙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듯, 세상에는 정신이 이상한 인간들, 폭력적인 인간들, 성질 고약한 인간들이 넘쳐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량하게 살아갔다면 이 세상은 벌써 지상천국이 되었을 테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틀을 확 좁혀서 정밀하게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이의 수틀을 보듯 그렇게 앵글을 좁히고 보면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미세한 우주가 나타난다. 이제 하나의 작은 사건, 괴팍한 한 인간, 조그마한 어느 마을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떠오를 것이다.

이때 소리 소문 없이 무난히 잘 살아가는 재미없는 인간은 부적격이다. 대상은 우리의 주인공 메노키오처럼 그 시대와 불화를 겪으며 살아간 인물이어야 한다. 너무나 전형적인인간은 아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은 채 사회 속에 묻혀버린다. 메노키오처럼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되 주변 인물과 계속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 소위 이례적 정상은 흔히 파열음을 일으키며 틈새를 만들어낸다. 그 틈새를 잘 들여다보면 역사가는 사회의 큰 힘들이 어떻게 부딪히며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파악할 실마리를 찾아낸다. 실마리를 잘 찾아내려면 하찮은 것에서 남이 못 보는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메노키오라는 실마리를 잡고 찾아 들어간 근대 초의 세계는 어떤 곳이었던가?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민중 문화와 엘리트 문화가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농민들은 책을 읽고 그것을 자신들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해내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그런 현상 자체가 갈등을 일으키며 변화 중이었다는 것이다. 교회와 귀족, 군주는 기묘한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내며 그들에 저항하는 민중 문화를 더 이상 용인하려 하지 않았다. 메노키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문과 화형대의 불꽃이었다. 조만간 엘리트 문화는 민중들의 정신세계를 공략하여 그들의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종국적으로 균질적인 문화를 만들어 덮어씌우기를 할 것이다. 이것이 이탈리아 산골의 한 방앗간지기의 내면을 재구성한 작디작은 세계로부터 끄집어낸 역사의 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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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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