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문자 문화와 구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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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메노키오가 그 특이한 사고를 만들어낸 데에는 분명 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때는 바야흐로 인쇄술의 시대로 성큼 들어와 있어서 산골 마을에서도 어렵지 않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읽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독법으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 독법은 완전히 그 혼자만의 방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민중 문화의 방식이라고 해야 옳다. 그가 그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저자가 끈질기게 추적하여 밝히고 있듯이, 메노키오가 읽은 책의 원래 내용과 그가 재판 과정에서 말한 내용을 비교해보면 그는 책을 원래 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텍스트text를 콘텍스트context 속으로 가지고 와서 그 속에서 읽었다. 달리 표현하면 그는 마음속에 필터를 가지고 책 내용을 걸러가며 수용하고 있었다. 이 필터는 장구한 기간 농민 세계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농민 문화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메노키오의 정신세계는 문자 문화와 구술 문화, 달리 말하면 엘리트 문화와 민중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서 상층 문자 문화민중 구술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민중 문화는 상층 문화에 종속된 것인가?(망드루) 아니면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가진 것인가?(볼렘) 혹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인가?(푸코) 저자는 근대 초기까지 그 양자가 은밀히 소통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바흐친의 견해에 동조한다.

물론 그 두 세계는 기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구술 문화의 언어가 (머티리얼하다는 의미로) 물질적이라면 문자 문화의 언어는 정신적이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구술 문화에 대한 문자 문화의 우위는 무엇보다 경험에 대한 추상의 우위였다. 기록과 권력은 늘 함께해왔다. 이집트의 서기나 중국의 관료들로부터 시작된 이 관계는 역사를 관통해 지속되어왔다. 그런데 인쇄술이 그런 관계를 비틀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상층 엘리트들 중에 농민 문화의 내용을 받아들여 그들 세계에 동력을 더했던 건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진즈부르그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 반대 방향이다. 농민들이 문자 세계의 내용을 접하여 그것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여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부분적으로 거부하며, 또 부분적으로는 새롭게 번안하여 수용하는 현상 말이다.

메노키오는 책의 세계에 주저 없이 다가가려 했다. 그가 소리 높여 비판하는 것 중 첫 번째가 이와 관련이 있다. 권력자들만이 문자 세계의 지식을 독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러 라틴어를 사용하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다. 이제 베네치아의 서점에서 2솔디만 주면 살 수 있는 지식을 독점하려는 사제들의 의도는 사악한 것이다. 우리라고 왜 그런 것들을 알아서는 안 되는가?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마음으로 해석할 자유가 왜 나쁜가? 실제 그렇게 해석해낸 결과물은 매우 창의적이다. 메노키오를 비롯한 농민들은 상징과 추상을 거부하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들로 변형시키고자 했다. 저 멀리 있는 아득한 개념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우리에게 낯익은 개념으로 만들어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지주地主로 변형시키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그들의 해석은 계급적이고 평등적이고 도덕적이며 더 나아가서 실천적이다. 이를테면 천국과 지옥은 사제들이 만들어놓은 허구이고, 결국 그들이 장사해먹기 위해 만든 방편에 불과하다. 지옥 같은 게 있다면 바로 이 세상에 있어서 잘못한 놈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호한 천국보다는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세상인 농촌 유토피아 같은 구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 종교 재판소에 끌려온 메노키오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자신의 생각을 종교계나 세속의 권력자들에게 들이대고 싶어 안달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개진하며 세상을 꾸짖고 자신의 염원을 표출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꾸 자신의 생각이 좌절당하자 사제를 모두 죽이고 싶다는 과격한 의사까지 슬쩍 비추곤 했다.

메노키오는 결국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반성하며 살겠으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탄원서도 올렸지만, 만장일치로 그가 이단의 교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에서도 이 사건을 아주 특이한 사례로 보았던 것 같다. 판결문은 다른 재판의 경우보다 네다섯 배나 길게 쓰여 있다. 이단 판정을 받았으니 그는 평생 참회복habitello을 입고 옥살이를 해야 했다. 국가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요즘 교도소와 달리 당시에는 그 가족이 비용을 대야 했으므로 온 집안에 재앙이 닥친 것이다.

다행히 2년 후 그는 일종의 가석방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제 조용히 살아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살아갈 인물이 못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옛 버릇이 살아나서 다시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또 체포되었고 고문을 받다가 결국 화형당하는 것으로 인생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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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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