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치즈 속 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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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메노키오가 일관되게 견지하는 관점 중 하나는 신성神聖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는 이 세계는 치즈와 같고 거기에서 생겨난 구더기 같은 것이 하느님과 천사라고 하는 그 기기묘묘한 주장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했다. 도대체 이 이상한 메타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물론 시골에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일상의 경험에서 비유를 찾아내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메노키오는 천사까지 포함하여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신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무질서하고 거대한 물질로부터 탄생하였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 치즈와 구더기 이야기를 끌어왔다. 그러니까 혼돈이 성스러운 권위에 우선한다. 혼돈으로부터 생명체, 천사, 심지어 하느님이 자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우리같이 잘 배운 사람들은 이를 두고 유물론적 우주관이라는 폼 나는 이름을 붙였을 법하다. 하여튼 그런 주장을 커피 속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꼭 치즈 속 구더기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설명해야 했을까?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이야기와 똑같은 신화를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다에 나오는 인도 신화에서는 우주의 기원이 우유의 응고 상태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세상은 창조주들이 휘저어놓은 태초의 응고된 바닷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칼무크 족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태초에 바닷물은 우유의 표면에 형성되는 얇은 막과 같은 견고한 층으로 덮여 있었고, 그 표면 위로 식물·동물·인간 그리고 신들이 뚫고 나왔다. 태초에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그것은 바닷물에 의해 거품처럼 휘저어졌고, 치즈처럼 응고되면서 그 속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구더기들이 태어났다. 이 구더기들이 인간이 되었고,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지혜로운 자가 하느님이었다.

 

어떻게 그 먼 시공간을 격하여 이처럼 똑같은 사고방식이 나타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메노키오가 칼무크 족 신화를 알았을 리는 없고, 아마도 어떤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작동했던 게 아닐까 막연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치즈 우주관구더기 신관神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의 사고와 표현 방식은 영어로 말하면 머티리얼mate-rial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물론적materialistic’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물질적이라거나 혹은 구체적이라고 해도 딱 맞지는 않다. 앞에서 살펴본 성모 마리아의 장례식 에피소드에 대한 그의 해석을 다시 생각해보자. 원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성모의 처녀성이라든지 그녀의 숭고함 같은 추상적인 내용들이다. 그런데 메노키오는 그야말로 사건 그 자체, 즉 사람들이 달려들어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보아 성모가 신분이 그리 높은 인물이 아니라는 내용을 짚어낸다. 글에 나타난 그대로 머티리얼하게 읽어버리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통상 교회에서 하느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의 방식대로 파악하면 이때 주는 문자 그대로 주인이다. 그런데 예수가 못 박혀 죽었다면 그가 진짜 주인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저는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하느님이라면 자신을 잡아가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 주인이 자신을 잡아가도록 스스로를 방치했다는 사실은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하느님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늘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일을 하지 직접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성령은 자신의 일꾼인 천사들을 통해서모든 피조물들을 만들었다. 사실 하느님은 천사들의 도움 없이도 이 세상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집 짓는 목수가 일꾼들을 시키지 않고 혼자서도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시간은 훨씬 더 걸리겠지만말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숙련된 일꾼들을 시켜서 일을 추진한다.

이런 비유들을 통해 그는 기독교 교리를 친숙하게 만들어서 이해하려 했다. 목수, 벌목공, 석공 일도 했던 그가 봤을 때 하느님은 목수나 석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물리적 행위, 곧 육체노동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주인이기 때문에 직접 일을 하지 않는다.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참여한 것은 조수들과 일꾼들, 즉 천사들이었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자연이다. 치즈에서 구더기가 만들어지듯 자연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다.

메노키오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주 하느님같은 것은 없다. 그런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서 살며 일꾼들에게 밭일을 맡긴 일종의 부재지주다. 그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그런 먼 곳에 계신 알 수 없는 하느님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계신 하느님, 재료들과 용해되어 세상과 하나인 하느님이다. “저는 이 세상 전체, 즉 공기와 흙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이 하느님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이미지와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인간 내부에는 공기···물이 존재하며, 이러한 사실로부터 공기···물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단인가!

 


 

* 참고로 말하면, 요즘 우리가 접하는 치즈는 모두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원재료인 우유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약품을 넣어 구더기가 슬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치즈를 먹는 도중에 구더기가 꼬물거리며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치즈 제조 과정이나 혹은 치즈를 먹는 도중에 종종 구더기가 나오곤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공장에서 제조한 간장을 주로 사 먹다 보니 구더기가 둥둥 떠 있는 간장독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비슷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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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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