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특별한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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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문제는 이들이 책을 읽는 방식이다. 민중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방식대로 책을 보았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메노키오는 보라지네의 황금 성인전Golden Legend에서 복된 성처녀 마리아의 승천에 대하여를 읽었다. 그 이야기는 마리아가 죽었을 때 사도들이 관을 메고 가는 장면을 그린다. 어느 도시를 지나는데 그곳의 폭도들이 나타나 사기꾼(예수)을 낳은 저 육신을 불로 태웁시다하며 습격해 왔다. 그 우두머리인 제사장이 관을 메치기 위해 손을 대자 손이 바짝 말라서 관 위에 붙어버렸다. 그는 고통으로 신음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구름 속의 천사들에 의해 시력을 잃었다. 제사장이 베드로에게 간청하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성모 마리아가 그의 성스러운 모친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자 비로소 손이 관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팔은 여전히 말라 있었고 심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베드로가 다시 관에 입 맞추고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이 자궁에서 출생하였으나 마리아는 출산 후에도 처녀로 남아 있었다고 말하시오하고 시켰다. 베드로가 하라는 대로 하자 그제야 제사장의 손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이단자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려다가 기적을 경험하며 결국 예수와 성모를 찬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메노키오는 이 책을 엉뚱한 방식으로 읽었다. 신문관이 그에게 마리아보다 황후가 더 높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고 다그쳤을 때 그는 이렇게 답한다.

 

물론입니다. 황후가 마리아보다 더 높은 존재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렇다는 것이었지요. 그 성모에 대한 책에서는 성모에 대한 그 어떤 존경의 표현도 언급되지 않았고, 더구나 그녀의 시신이 묘지로 옮겨질 때 어떤 사람은 그 시신을 사도들의 어깨로부터 끌어 내리기 위해 팔로 잡아당기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메노키오에게는 마리아의 기적이나 처녀성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눈여겨본 것은 마리아에 대한 제사장의 불경스러운 행동이다. 마리아가 미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깔보고 그런 행동을 했다는 투다.

맨더빌 여행기역시 마찬가지다. 맨더빌 여행기는 중세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작가는 자신이 아시아를 직접 여행하고 온 것처럼 꾸며 여행기를 찬술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방 안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조합하고 상상력을 더해 쓴 것이다. 이 책에서 아시아는 온갖 괴물들과 식인종, 혹은 견두인犬頭人 같은 기괴한 인간 집단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런 곳 너머에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지상 낙원이 실재하는데 맨더빌은 바로 그 근처에까지 가보고 온 양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서술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런 신기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둘 테지만 메노키오는 이 책에서 이슬람교도가 주장하는 특별한 교훈을 발견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 왕 스스로 이런 식의 대접을 받는 것은 이상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그는 하느님이 아니라 예언자에 불과합니다.”

술탄이 기독교 세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공감을 표했다.

 

기독교도들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에 가는 대신 매일 선술집에서 동물처럼 노름하고, 술 마시고, 사기 행각을 일삼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단순하고 겸손하며 온화하고 모범적이며 자비로워야 할 테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한다. 이들은 너무 탐욕스러운 나머지 사소한 이득을 위해 자신의 자식들을 팔고, 누이들과 아내들에게 매춘을 강요한다.

 

메노키오는 200년 전의 책에서 술탄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내용을 통해 교회에 대한 자신의 신랄한 비판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또 맨더빌이 그리는 아시아 세계에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사실을 보고는 그러한 다양성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 희한한 상상의 여행기가 그에게는 상대주의 혹은 관용의 정신을 키워주는 교과서가 된 것이다.

데카메론역시 그의 특이한 사고를 키워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는 신문관에게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토로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터키인으로 태어났다면 터키인으로 남기를 원했을 겁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정말로 깬 사람의 견해이지만, 종교 재판소에 끌려와 신문관에게 할 말은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신문관을 설득하려고 했다. “신문관님, 제발 제 말에 귀 기울여주세요.” 그러면서 들려주는 것이 바로 데카메론에 나오는 세 개의 반지 이야기이다. 옛날에 한 군주가 자신의 반지를 갖게 되는 사람이 후계자가 될 거라고 말했다. 임종을 앞두고 왕은 똑같은 반지 두 개를 더 만들어 세 아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세 아들은 전부 자기가 진짜 반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세 개의 반지는 너무나 비슷해서 도저히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느님은 기독교인과 터키인 그리고 유대인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자녀를 거느리셨고 그들 각각 자신의 계율에 따라 살도록 하셔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는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므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만약 터키인으로 태어났다면 터키인으로 살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러면 그대는 우리가 어느 것이 올바른 계율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신문관이 묻자 그는 당당하게 답한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앙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진정 어떤 것이 좋은지는 알 수 없지요. 그렇지만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친지들이 기독교인이었기에 저도 기독교인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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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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