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농민들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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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신문관님, 저의 생각은 제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범을 대라는 요구에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농민은 한낱 일벌레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존재다. 더군다나 메노키오처럼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컨대 그는 데카메론을 읽고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구원받을 수 있으며, 따라서 이슬람교도는 기독교도로 전향하지 않고 이슬람교도로 남아 있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 그는 읽은 책의 제목을 잊어버리고 내용을 혼동하기도 했지만 눈 밝은 역사가는 그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역추적하기도 한다. 메노키오가 기억하는 내용 중에는 카라비아의 꿈이라는 책에서 본 것도 있다. 보석상인 카라비아는 정의롭지 못한 것들로 가득한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며 한없는 슬픔에 잠긴다. 익살꾼 잔폴로는 그를 위로하며 이 세상에 참다운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그에게 나타나겠다고 약속하는데, 실제로 얼마 후에 친구의 꿈에 나타나 천국에서 성 베드로와 나눈 이야기, 지옥의 악마와 사귀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런 형식에 담아 전달하는 중요한 내용은 성직자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람은 위선적인 성직자 덕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구원받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을 믿기 때문이네.

둘째로는 인간 예수가 자신을 믿는 모든 이를

자신의 피로 구원한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네.

셋째로는 자애로써 마음을 온건하게 지키고

성령의 빛 안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네.

그가 삼위일체인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원한다면

이 삼위일체가 그대를 지옥에서 구원할 것이네.

 

이런 내용을 보면 이탈리아의 촌구석에서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는 책의 내용이 결코 얄팍한 신학이 아니라 상당히 깊이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메노키오가 읽은 책은 밝혀진 것만 열한 권에 달한다. 그중에는 속어로 씌어진 성서도 있고 성모의 루치다리오』 『최후 심판의 역사와 같은 종교 서적, 맨더빌 여행기』 『데카메론같은 세속적 내용의 책도 있다. 심지어 여기에 코란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제목과 저자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제의 코란은 1547년에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이탈리아어판이다. 그가 본 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여섯 권은 빌려 읽은 것들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주민들이 책들을 돌려가며 읽고 있었던 것이다. 기초적인 라틴어를 가르치는 초등 교육기관이 있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 조그만 산골 마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이토록 많았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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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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