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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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역사가도 일요일에는 다른 일 하고 다른 꿈을 꾸고 싶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고색창연한 사료, 장부책처럼 메마른 논문 대신 풍요로운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기웃거려보고 싶다. 역사가들은 흔히 천형天刑처럼 얻어걸린 자기 전문 분야에서 평생 꼼꼼하고 치밀한 분석을 하며 지내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름답고 명랑한 시심詩心을 간직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실 겉으로만 많이 달라 보일 뿐이지 역사와 문학은 본래 같은 부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분명 서로 상통한다. 히스토리history 역시 스토리story의 일종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현대문학에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20126월호부터 역사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예술의 텍스트들과 역사학의 중요한 성과를 연결하여 살펴보는 글들을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산책은 때로 향기로운 봄 동산을 거닐 듯, 솔바람 소리 시원한 가을 산행하듯 한 적도 있지만, 때로는 천둥벼락 사나운 험난한 길이기도 했다. 인간들이 지내온 지난 길들이 아름답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쓴 글 열한 편을 여기 묶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으로부터 시작하여 카사노바의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거쳐 홀로코스트 영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까지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 결과다. 일단은 역사학의 관습대로 이 글들을 얼추 시대별로 배열해보았다. 그렇다고 한들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체계하에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부를 보이는 짧은 단면들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지어내는 경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본다는 의미 정도라 할 것이다. 그래도 굳이 이렇게 묶는 일이 어떤 의미를 띨지 한번 생각해보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떠올려보자.*

베르메르는 밝고 정밀靜謐한 실내 정경을 그린 매력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곡선 형태의 물체를 그리고 그 표면에 주변 사물들이 비치도록 하는 방식을 즐겨 이용했다. 대표적인 사물이 진주 귀고리다. 그가 남긴 그림 중 적어도 여덟 점에서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이 등장한다. 이 귀고리에는 그 여인들이 살고 있는 방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희미한 형상과 윤곽이 나타난다. 그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역시 마찬가지다. 그림 속 소녀는 이례적으로 큰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는데, 그 귀고리의 표면에는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의 동정과 터번, 왼쪽으로 소녀의 모습이 비치는 창문, 그리고 소녀가 앉아 있는 방의 어렴풋한 모습이 보인다. 그는 이런 방식을 통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 너머의 모습을 제시한다.

세상만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불교에서는 인드라의 그물망으로 표현한다. 인드라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모든 만물이 서로 엮인 하나의 그물처럼 만들었는데, 그 그물의 매듭 하나하나마다 진주가 꿰여 있다. 그 진주는 현재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을 나타낸다. 모든 진주는 다른 모든 진주와 연결되어 있고, 또 모든 진주의 표면에는 다른 모든 진주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게 세상 만물은 다른 만물을 비추고 있다.

역사와 문학이 공들여 빚어서 제시하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머나먼 과거로부터 오늘 우리에게까지 존재의 사슬이 이어져 있다. 과거의 어느 작은 사건 하나라도 우리와 무관치 않고, 오늘 우리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지난 시대 인류의 정신과 통한다. 작은 구슬 하나에 인류의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아롱거리며 빛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마음으로 열한 개의 구슬을 모아보았다.

이 책을 보는 일요일의 독자들역시 마찬가지의 심정을 느낄 때가 있으리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 굳건히 발붙이고 살아야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때로 홀연히 딴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우리의 정신은 이븐 바투타를 따라 광대한 초원을 좇아갈 수도 있고, 18세기 파리의 인쇄 골목에서 밤새 고양이 소리를 내며 사장을 괴롭히는 악동들을 응원할 수도 있고, 근대 초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에서 엉뚱한 우주론을 설파하는 기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도 있다. 너무나도 다른 세상 이야기지만 또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무변광대의 세상을 잠시라도 느끼고 올 수 있으리라.

 


* 티머시 브룩, 베르메르의 모자,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교류 문명사, 추수밭, 박인균 옮김, 2008, p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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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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