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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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회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아미르 호스로우 델라비의 민담집 8개의 천국에 처음 나온다. 세렌딥(Serendip, 스리랑카)의 왕자 세 명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라에서 쫓겨났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던 어느 날, 이들은 낙타를 잃어버린 한 아프리카인을 만났다. 세 소년은 본 적도 없는 낙타의 생김을 아프리카인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그 낙타는 애꾸눈에 이빨이 하나 빠졌고 다리를 저는데, 한쪽에는 기름, 다른 쪽에는 꿀을 싣고 있으며, 임신한 여인이 곁을 지킨다는 것이다. 낙타 주인은 필시 이들이 낙타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국왕에 고발했다.

하지만 얼마 후 주인이 낙타를 도로 찾아 이들의 무고함이 밝혀져 감옥에서 풀려 나오게 되었다. 왕은 어떻게 보지도 않은 낙타의 생김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답은 이렇다. 길가의 왼쪽에 있는 풀만 뜯어 먹었으니 낙타의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것이고, 뜯어 먹은 풀이 일부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크기가 이빨만 한 것으로 보아 그 낙타는 이가 하나 빠졌을 것이다. 한쪽 발자국이 다른 쪽 발자국보다 약하게 찍힌 걸 봐서는 다리를 저는 게 분명하고, 길 한쪽에는 개미들이 모여들고 다른 쪽에는 벌이 부지런히 오가니 이는 기름과 꿀을 조금씩 흘린 때문이다. 그 옆에 난 샌들 자국으로 보아 낙타를 몰고 가는 건 여자다. 게다가 축축하게 젖은 흔적이 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다가,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난 표시도 있으니 그 여자는 분명 임부妊婦.

감탄한 왕이 세 소년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그런데 다 먹고 난 후 세 소년이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감상을 이야기한다. 포도주는 사람 피의 맛이 나고, 양고기에는 개의 피가 섞여 있으며, 왕은 요리사의 아들임에 틀림없다. 왕이 알아보니 포도밭이 예전에는 공동묘지였고, 요리 재료인 암양이 어릴 때 개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후께서 과거에 요리사의 꼬임에 넘어가셨었노라고 고백하시는 게 아닌가. 그런데 세 소년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포도주는 마시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고, 양고기에는 피의 맛이 배어 있었다. 왕께서는 매번 요리와 빵 이야기만 하시니, 필경 왕관에서 나신 게 아니라 빵틀에서 나신 게 틀림없다’. 국왕은 이 지혜로운 왕자들을 고향 세렌딥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이 페르시아 이야기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려, 볼테르의 자디그로부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자주 인용되었다. 세렌디피티라는 말은 지금은 의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도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능력혹은 놀라운 관찰 능력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자잘한 사실을 잘 관찰한 다음 그로부터 추론하여 타당한 이론을 만들어내려면 강한 호기심과 예민한 추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셜록 홈즈가 이에 가장 근접한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셜록 홈즈처럼 작은 실마리를 잡아 역사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역사가가 있다.*

 


 

*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김정하유제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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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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