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천지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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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1583928, 이탈리아의 프리울리 지방에 사는 방앗간지기 메노키오가 종교 재판소에 고발되었다. 늘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이유에서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다녔기에 그런 사단이 일어났을까?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질문에 그가 뭐라고 답했는지 보자.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공기··,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순한 존재는 이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그는 네 명의 부하, 다시 말해서 루시퍼,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과 함께 주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시퍼는 절대신인 하느님과 동등해지려고 하였습니다. 이 오만함 때문에 하느님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하늘에서 추방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추방된 천사들을 대신하여 아담과 이브, 그리고 많은 수의 사람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이 무리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듣지 않자, 그의 아들을 보냈는데 유대인들이 그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의 천지 창조설에 의하면 이 세상은 원래 혼란스러운 치즈 덩어리 같았고 하느님이나 천사는 모두 거기에서 생겨난 구더기 같은 존재들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재판관이 질겁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의 마음속에 이런 기묘한 사고방식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종교 재판소는 이 이상한 이단자를 철저히 심문하고 꼼꼼하게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고문받을 때 내지른 비명 소리까지 그대로 옮겨 적은 그 자세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 살았던 특이한 방앗간지기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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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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