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찬 차르: ‘아메리카화’된 예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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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유럽인들이 희생 제의를 보았을 때 악마 같은 일이라고 매도한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신부들은 그런 악마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아메리카의 기존 종교와 기독교가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스페인인들은 현지 주민들의 문화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기독교 이외에 그들이 접해본 종교는 이슬람교와 유대교밖에 없었으므로, 인디언 종교 역시 그런 틀 안에서 이해했다. 아스테카의 신전을 모스크로, 인디언 사제를 무슬림 사제와 유사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식이다. 그들은 곧 자신들과 인디언들의 관계를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이교도 간의 투쟁이라는 틀로 이해하려 했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의 인신 희생 제의를 악마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철저히 금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문명권에서 인신 희생은 신과 인간 간의 관계를 강화시켜서 우주를 존재하도록 하는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 너무나도 중요한 행위였으므로, 이것을 없애는 것은 아스테카 문명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었다.

당시 이곳에 온 스페인 수도사들은 메시아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종말이 가까웠으므로 하루바삐 세계의 모든 지역을 기독교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그런 만큼 이들의 전도 열의는 실로 대단하여 2천만 명의 인디언들 속으로 고작 수백 명의 수도사들이 용감하게 파고들어 갔다. 인디언 지도자들은 당연히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곧 무력화되었고, 그들 자신이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일종의 문화적 부역자가 되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원주민 인구가 아예 궤멸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역사가들은 15세기 말에 2천만 명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한 세기 뒤에는 75만 명으로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후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불어난 인구는 더 이상 원래의 문명을 그대로 간직한 과거 세계의 주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신 희생 제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형태를 바꾸어 계속 유지되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메리카의 기독교 전도의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도사들이 행한 영혼의 정복은 오해와 타협 위에 이루어졌다. 선교사들에게는 무엇보다 언어 문제가 심각했다. 이들이 빠른 시간 내에 인디언 언어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었으므로,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해 인디언들의 종교적 용어와 형식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들은 자신의 주장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접하고서는 그들 나름으로 기독교를 이해했다. 이미지와 성인 숭배를 예로 들어보자. 수도사들은 성인들이 그려진 성화를 보여주며 이들이 하늘나라에 사는 인물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은 이크시프틀라ixiptl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나우아틀어로 이 용어는 신성성의 직접적인 현존즉 신령스러운 존재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수도사들이 성인화를 보여주면서 그 의미를 이야기했을 때 인디언들은 성인이 바로 그 그림 속에 실제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림이 나타내는 성인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그림 자체를 신통한 힘의 실제로 숭배한 것이다. 선교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상 숭배를 가르친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인디언들에게 기독교는 과거 신앙의 연속으로 이해되었다. 단지 새로운 신들이 과거의 신들을 대체했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사실 가톨릭교회 역시 이런 점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 그들은 기독교 축제와 옛 축제를 동일시하려 했고, 현지인들의 옛날 노래와 리듬을 그대로 사용하되 다만 기독교적인 가사를 거기에 붙였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접한 인디언들은 훨씬 쉽게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교회 측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인디언들이 과거의 이교 내용을 점차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순수한 기독교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례를 주어서 신자로 만들거나 기독교도 노예로 만들어 인디언들을 기독교 내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기독교가 인디언화되었다. 가톨릭교회는 그들이 주도적으로 복음을 전파해나간다고 믿었겠지만 오히려 기독교가 인디언 문화에 흡수되었던 것이다. 인디언들로서는 아직 그들에게 남아 있는 과거의 문화 요소들을 새로운 신앙과 뒤섞음으로써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 결과 멕시코의 가톨릭 신앙은 인디언적이고 혼혈적이고 민중적이 되었다.

 


 

* Serge Gruzinski, ‘Les Christs sanglants des èglises mexicaines’, L’Histoire, no. 290, Septembr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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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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