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찬 차르: 인간의 생명으로 우주를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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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의례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아스테카 제국에서 행한 인신 희생의 구체적인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신 희생은 아주 엄격하게 규정된 절차에 따라 행해졌다.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장시간 춤을 추게 하고, 밤샘과 금식을 강요했다. 힘을 빠지게 만드는 동작을 시키고 또 종종 고문을 가했으며, 그와 동시에 마약을 주어서 의식을 흐려놓았다. 하긴, 산 채로 가슴을 가르는 극단적인 고통을 맨정신으로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흰색 깃털로 몸을 장식한 희생자를 피라미드 꼭대기로 끌고 올라가서 돌 제단에 눕힌다. 그러면 사제는 날카로운 규석으로 만든 칼로 희생자의 옆구리를 째고 펄떡이는 심장을 꺼낸다. 이 심장을 의식용 그릇 안에 집어넣어 태양신께 바치는 동시에 희생자의 피가 피라미드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게 한다. 피가 다 빠지면 사체를 계단 밑으로 집어 던지고, 곧바로 다음 희생자를 끌어 올린다. 희생자의 사체는 그를 포로로 잡았던 전사에게 주었는데, 전사는 희생자의 머리를 잘라 트로피로 삼았다. 관자놀이 부근에 구멍을 뚫어 긴 장대에 꿰고 이것을 촘판틀리라 불리는 기념물 위에 설치한다. 촘판틀리는 거대한 주판처럼 생겼는데, 각각의 가로줄에는 사람의 머리가 염주처럼 꿰어져 있다(나중에는 실제 사람 머리가 아니라 돌로 사람 머리 형상을 만들어 표현하기도 했다). 남은 몸통과 내장은 버리고 팔다리만 잘라서 먹었다. 그 가운데 왼쪽 다리는 고귀한 부분이라 여겨 군주에게 바쳤다. 인간의 살을 먹는 데에는 여러 금기가 있어서 이에 따르면 사람 고기는 반드시 끓여서 양념 없이 먹어야 했다.

이런 설명을 보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신화 및 종교적 내용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특기할 사실은 이런 식으로 죽이고 사체를 먹는 것은 남성에게만 한정된 것이며, 여성의 경우는 참수했고아주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사체를 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사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형 집행은 투석[간통죄의 경우], 목 조르기, 혹은 곤봉으로 목을 치는 방식 등이 사용되었다.)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메리카 문명의 핵심을 찌르는 중요한 문제이다. 아스테카인들은 우주가 존립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태양과 달이 돌고 계절이 바뀌는 따위의 모든 일에는 자연히 에너지가 드는데, 이 에너지가 다하면 우주는 종말을 맞는다. 그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이다. 태양과 대지는 기근과 갈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신은 피에 목말라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기요틴guillotine으로 죽이는 것을 두고 신은 피에 목마르다는 표현이 쓰인 것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사람의 심장을 꺼내 태양에게 먹이고 대지에 피를 흘려주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다 소진하지 않고 죽으면 남은 삶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절약하게 된다. 이것을 바쳐서 우주를 존립케 하는 것이다. 잔인해 보이는 살인 행위 이면에는 이처럼 자신의 죽음으로 우주를 살린다는 심오한 철학이 숨어 있다.

우주의 핵심은 태양이다. 이 우주관에서 태양은 천상의 존재이자 동시에 지상의 존재이며, 낮과 밤의 이중적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태양을 나타내는 가장 흔한 이미지는 혀를 길게 뺀 사람 모양이다. 이 혀는 곧 우주적인 칼이며 이 칼로 사람의 심장을 꺼낸다. 혹은 피를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짐승 모양으로 태양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에는 독수리와 재규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늘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땅의 존재로서 둘 다 인간의 심장을 탐하는 강력한 포식동물이다.

이런 사상을 나타내는 데에 꽃 메타포가 자주 쓰인 점도 특이하다. 아스테카 유적 중에 꽃이 그려져 있는 경우 이것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는 대개 꽃 같은 죽음, 죽음의 꽃을 의미한다. 꽃은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우주 에너지의 감퇴에 대항하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학자들은 이제 이런 시각으로 지난날 잘못 해석했던 아메리카의 유적들을 재해석하고 있다. 예컨대 테오티우아칸의 벽화에서 꽃의 꿀을 마시는 우아한 새들은 서정적인 풍경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피를 마시는 장면으로 새롭게 읽혀졌다.

지금까지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에 집중하여 이야기했지만, 인신 희생에 의한 우주의 회생이라는 사상은 단지 이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마야나 잉카, 혹은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예컨대 브라질에 처음 찾아간 유럽인들 역시 투피 족 부족들 간에 계속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포로들을 마을로 데리고 가서 의식적인 처형을 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과시적인 폭력 행위, 그리고 희생자의 살을 석쇠에 굽는 현상 등은 멕시코와 기본적으로 똑같은 문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브라질 원주민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한스 스타덴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독일 출신 군인인 그는 브라질 탐사선단에 참여했다가 난파 사고를 당한 후 1552년에 내륙에서 투피남바 족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그들은 다음 축제 때 그를 희생시키기 위해 붙잡아두었지만, 그는 마을의 주요 인사들의 병을 고쳐준 덕분에 친교를 맺어 목숨을 구했다. 그 덕에 그는 투피남바 족 사람들의 구체적인 면면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전투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마을로 잡혀 들어가 오랜 기간 동안 죽음의 준비를 당했다. 우선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여자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고, 머리카락을 잘리고 몸을 회색으로 물들인 다음 붉은 깃털을 꽂게 된다. 희생의 날이 되면, 우선 돌멩이가 박힌 막대기로 구타를 당한 다음 의식용 망치로 목덜미를 맞고 살해된다. 그 후 희생자의 뇌수는 잔에 모아지고 몸통 전체는 큰 석쇠 위에서 구워진다(바로 이 상황을 그린 그림이 통상적인 식인종의 이미지로 널리 쓰였다). 몸의 지방질이 타고 나면 사체는 잘게 잘린다. 팔다리가 선호되는 부위이지만, 나머지 살과 가죽 등도 모두 소비된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기본 성향은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과 유사하다. 유럽인들은 처음 이 야만적 행위를 보고 조상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행위라고 잘못 판단했지만, 사실 이는 아주 복잡한 절차를 밟아 행하는 종교의식이었다. 한스 스타덴은 투피남바 족의 동맹인 프랑스 출신인 척하며 살아남았다가 5년 만에 가까스로 도주했다.

페루 남부의 나스카 족은 머리-트로피로 유명하다. 이는 분명 인신 희생의 결과물로 보인다. 이곳의 모든 성화에는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거나 허리띠에 차거나 혹은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머리-트로피를 장식용품으로 사용하는 모습들이 표현되어 있다. 승리를 거둔 전사 외에도 때로는 고양이나 독수리가 희생자의 머리를 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육식동물로 표현된 태양이 틀림없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신전 아랫부분에서 실제 미라가 된 머리-트로피가 많이 발굴되었다. 그들은 희생자의 머리를 자른 후 상당히 세심한 처리 과정을 거쳐 트로피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눈과 입을 핀으로 꽂아 봉하고 후두부의 구멍을 통해 뇌수를 끄집어낸 다음 이마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곳을 통해 끈을 넣어 고정시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메리카 전체에 인신 희생과 식인 의식이 퍼져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유럽 대륙 전체가 지역마다 약간 다른 종교 의례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듯,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도 모두 약간씩 다른 의례를 발전시켰지만 큰 틀에서 유사한 종교 철학을 유지했다. 예컨대 여성의 사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적으로 같았다. 이런 종교관행은 아메리카 최초의 문명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올메카 시대부터 이미 유사한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3천 년에 걸친 인신 희생의 문화전통이 지켜져오던 터였다.

아메리카인들은 사람을 먹기 위해 죽이는 게 아니라 희생 제의를 거쳤기 때문에 사람을 먹는 것이다. 그 둘은 분명 다르다. 희생 제의의 핵심은 작은 부분을 희생해 전체를 살린다는 것이다. ‘꽃 같은 죽음으로 우리 생명을 신에게 먹이는 이 행위는 고귀한 일일까, 야만적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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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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