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바투타의 주유천하周遊天下: 초문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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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

이븐 바투타가 돌아다닌 세계는 이런 식의 팽창이 어느 정도 완결된, ‘이슬람의 집(다르 알 이슬람Dār al-Islām)’이라 불리는 초문명이었다. 이 세계는 다르 알-살람Dār al-Islām(‘평화의 집’)이지만 그 바깥의 세계는 다르 알-하릅Dār āl-Harb(‘전쟁의 집’)이다. ‘이슬람의 집은 정말로 엄청나게 큰 집이어서, 단지 하나의 문명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더 큰 개념으로서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여러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어떻게 여러 문명이 하나의 종교 안에 조화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사실 이슬람교는 각 문명에 대해 상당히 관대했다. 또 이슬람교를 수용하는 입장에서도 새 종교가 자신들의 기존 문화 요소와 비슷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예컨대 동물 희생이나 세정식(洗淨式, ritual ablution)은 조로아스터교와 비슷하며, 예배 동안 머리를 감추는 관습이나 할례 같은 것은 유대교와 비슷하다. 축제 후 한 달 동안 금식하는 것은 여러 종교 집단이 공유하는 사항이다.

이슬람은 개종을 적극 권하되 공존 혹은 종합의 정책도 폈다. 이슬람은 여러 종교 및 언어 공동체들을 수용하여 하나의 세계-문명으로 통합하는 성향을 띠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권의 확대는 최초의 지구적 문명global civilization으로 발전했다. 7-17세기의 1,000년 동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하여 구세계의 모든 문명들(유럽, 이란, 산스크리트, 말레이-자바, 중국)이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 이슬람권 주변의 상이한 문명 요소들이 들어와서 아랍 문명과 섞였다. 특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섞여 풍요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이슬람권은 여러 문화를 흡수하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했다. 예컨대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제지술을 배우고 이것을 사방에 전파했다. 이슬람교는 코란을 믿고 이것을 보급해야 하므로 책의 문명이라는 특징을 띠었다. 이럴진대 제지술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산물의 보급 또한 매우 중요했다. 무슬림들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작물들을 보급하며 농업 혁신을 일으키곤 했다. 711년 신드 지방을 정복한 후 인도 작물이 보급된 것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굳은밀, 사탕수수, , 수수, 바나나, 오렌지, 레몬, 라임, 수박, 시금치, 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면화가 인도에서 이슬람권의 중개를 통해 들어온 중요한 작물들이다. 이것들은 인도에서 이슬람권에 들어왔다가 이라크로부터 서쪽으로 보급되어 스페인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바다를 통해서는 마다가스카르까지, 또 카라반을 통해서는 사하라 너머 열대 서부 아프리카까지 전달되었다. 더 나아가서 13세기부터는 이런 작물들이 스페인, 시칠리아, 사이프러스를 통해 유럽 내부 지역으로도 전달되었다. 새로운 작물과 함께 매우 발달된 관개 기술도 함께 전달되어 각 문명권의 물질적 기반이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정신문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와 인도 등 고대에 찬란한 문명이 발달했던 곳에서 많은 지식들이 이슬람권에 들어가 그곳에서 보존되었다가 후대에 본고향으로, 혹은 다른 문명권으로 전달되었다. 흔히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를 언급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이 아랍 세계에서 보존되었다가 재발견되어서 유럽 근대 문화 발전의 기반을 닦아주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러한 설명은 자칫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식이 아랍권에서 냉동 상태로 보존되었다가 유럽에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아랍에서 스페인을 거쳐 유럽 대륙으로 넘어간 지식은 고대 그리스의 지식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리스, 인도, 이란 지식의 합금 상태였던 것이다.

이븐 바투타가 돌아다니며 확인한 것이 이런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한 무슬림으로서 이슬람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이슬람의 집안에서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끼며 이 세계의 탄탄한 인프라를 이용하여 여행했다. 세계는 다양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알라가 창조한 세계의 찬란한 변주variation에 불과하다. 그가 숙지하고 있는 이슬람법이 이 세계 내에 거의 똑같이 통용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랍어로 소통했다. 물론 그는 그 바깥 세계도 돌아다녀봤지만 이슬람 세계만큼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에게 이교도의 세계는 어쩌면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의 바로 직전 세대 여행자인 마르코 폴로(1254-1324)와 비교해보면 이 점이 더 명확해진다. 폴로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도 여행자이다. 당시 유럽은 유라시아 전체의 판도에서 보면 경제적으로나 정치군사적으로나 변방의 약소 지역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몽골이 막강한 힘으로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이 시대에 폴로 일행은 거의 전적으로 몽골 칸의 호의에 힘입어 여행을 완수했다. 폴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세계보다 우월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사람과 관습 등에 큰 관심을 두고 가급적 많은 것들을 보고 기록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고향 너머 외부 세계를 꼼꼼히 눈여겨보는 관찰자였다. 이 점에서 자기 문명 내부로 눈을 돌린 이븐 바투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븐 바투타의 편력은 바로 그 세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모로코에서 동아프리카,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 일부 지방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닌 곳은 각자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켜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전체가 통합된 이슬람권이었다. 그곳은 하나의 믿음 체계와 하나의 법체계 속에서 운영되는 자체 충족적인 세계이다. 이 안에서 상인들이 오가며 상품이 유통되고, 지식과 정보가 원활하게 전달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의 이슬람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였다. 이븐 바투타는 그 광대무변의 세계를 안내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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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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