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_ 칼요한 발그렌CARL-JOHAN VALLGREN
1964년 스웨덴 린셰핑에서 태어났다. 1987년에 첫 소설 『유목민』을 출간한 후 글쓰기와 음악 활동을 병행해 왔다. 1996년에 발표한 『도박꾼 루바쇼프에 관한 기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2년 발표한 『가면 : 마음을 읽는 괴물 헤라클레스 바르푸스의 복수극』으로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받으며 해외까지 널리 이름을 알렸다. 『가면』 은 25개국에서 출간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 러시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9년 작 『쿤셀만 & 쿤셀만』 역시 비평과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인어 남자』도 출간 즉시 극찬을 받으며 미국, 프랑스, 터키 등 1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이 외에 『멀리서 그리워하다』 『새 여자』 『지워진 열망』 『수면과 불면의 이야기』 『바크만 씨를 위한 소책자』 『베를린에서의 8장』 등의 작품이 있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 홈페이지 http://vallgren.nu
■ 옮긴이 _ 최세진
SF와 인문사회과학 전문 번역가. 저서로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있고, 역서로는 『SF 명예의 전당 2』 『SF 명예의 전당 3』 『계단의 집』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 『남자의 나라 아토스』『바라야 내전』 등이 있다.
■ 추천사
『인어 남자』는 강렬하게 빛나는 작은 보석이다. ……인어가 등장했을 때, 발그렌은 모든 어려움을 뚫고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그런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필요하다. —평론가 겸 작가 아르네 달
“판타지 장르에서 막 꺼내온 인어에 아이들의 괴롭힘을 얹어 스웨덴 초현실주의로 버무리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답하자면 ‘예술’이 된다.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위대한 작가만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 —《베켄다비센》
『인어 남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이 소설은 행복하게 시작하지도 않고 행복하게 끝나지도 않지만, 공감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스몰란스포스텐》
“리얼리즘이 산산이 부서지고 신뢰를 모두 잃었을 때, 소설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 책은 탁월한 현실감과 사실성을 획득한다. 불법적인 밀어를 나갔던 어선이 우연히 전혀 본 적 없는 심해 괴물을 잡는다. 그 때가 이 전성기의 스티븐 킹의 진가를 떠올리게 하는 시점이다.” —《엑스프레센》
“칼요한 발그렌은 독자의 마음을 할퀴고 쥐어뜯는 통렬한 장면들이 담긴 사실적인 소설을 써왔다. 내가 그의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와 요약은 다음과 같다. 발그렌은 빛나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다.” —《쉬드스벤스칸》
칼요한 발그렌은 가능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형식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몰두하게 하는 강력한 내용을 담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놀라운 창의력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이 소설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깜짝 상자 같은 문학이다. —《예테보리포스텐》
■ 책 속으로
좋은 사람들이 대개는 더 나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진짜 역겨운 건, 결국에는 본래 사는 게 그런 거라 믿게 되고, 아무렇게나 우리 집에 들어와 술을 진창 마시고 “꼬마 아가씨 몇 살이야? 학교는 어때?” 같은 잡담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양 해대거나 술 취한 목소리로 우리가 자기 같은 사람들을 참아내야 한다는 건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걸 듣는 일이 평범한 일상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점이다.
-63쪽
내 몸에 구멍이 나서 그 작은 구멍을 통해 기력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봤던 광경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모든 증오와 그 생물을 해치려는 욕구가 어디에서 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어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런 모습에 매혹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자신들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인식 말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생물…… 인어는…… 존재할 수 없었다.
-204쪽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하러 가는 거겠지. 그 생물을 학대해서 조금씩 생명을 빼앗는 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한다. 아니면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못 보고 있는 걸까? 밀수 담배와 그 생물, 아빠, 레이프, 약쟁이, 토뮈네 형들, 온갖 사기꾼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그 촘촘한 그물망의 가장자리에서 누군가 무심코 행한 한 번의 몸짓이 모든 걸 망쳐놓을 것이다.
-214쪽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생물은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위해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불러준 것 같았다. 자장가나 위로가 되는 노래를 곧장 내 신경계로 보내서 모든 걸 바로잡은 느낌이었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내 안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부러진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지 물었다. 자기와 함께 바다로 나가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그도 알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물이었다. 우리는 종이 다를 뿐만 아니라, 땅 위에 있는 우리 세계에 산다. 여기는 그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250쪽
쪽문을 열다가 넋을 놓았다. 그가 어둠속에서 환하게 빛을 뿜었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들의 생체 발광과 흡사했는데 훨씬 더 밝다는 점이 달랐다. 그의 비늘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동자에서도 빛이 나 물웅덩이 전체가 밝게 빛났다. 청록색 빛이 벽과 천장, 그의 주변에 있는 물을 밝게 비췄다. 아마 그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그런 방식으로 앞을 볼 것이다. 자기 몸을 일종의 전등처럼 사용해서.
-266쪽
그의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들렸다. 그가 마치 내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소리나 말로 이루어지지 않은 목소리 아닌 목소리가 내 온몸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녀석들을 자신의 영향력 범위 안으로 끌어들였다.
예라르드가 꼼짝도 않고 그대로 섰다.
“이게 뭐야?” 녀석이 페데르를 쳐다보며 물었다.
“몰라.”
“너도 이게 들려? 도대체 이게 뭐야?”
하지만 그 목소리는 밖이 아니라 몸 안에서 들려왔다. 자신의 몸 안에 빈 공간이 생겨서 그 공간들이 갑자기 공명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인어가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