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상태였던 ‘강그리옹 장의사’에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겼다! 다시 살아난 시체를 싣고 안개 속을 내달리는 영구차. 과연 어디로 향하는 걸까? 짧은 커트 편집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에피소드들이나 툭툭 내뱉듯 감칠맛 나게 이어지는 대사,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저자 : 조엘 에글로프
1970년 프랑스 모젤 출생으로,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파리 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다른 어떤 데에서도 볼 수 없는” 글이라는 상찬을 받으며 독자와 비평가들을 사로잡았다. 1999년 발표한 첫 소설 『장의사 강그리옹』으로 <알렝 푸르니에상>을 수상하였고, 『해를 본 사람들』로 <에륵만 샤트라앙상>,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했던 짓』으로 <블랙유머 대상>, 『도살장 사람들』로 프랑스 독자들이 직접 뽑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엥테르 문학상>을 받았다. 『도살장 사람들』이 희곡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올려졌고 『해를 본 사람들』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남자』는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로, 자아를 상실해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묵직하고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역자 : 이재룡 195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숭실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꿀벌의 언어』, 옮긴 책으로는 조엘 에글로프의 『장의사 강그리옹』『해를 본 사람들』『도살장 사람들』, 장 필립 뚜생의 『사랑하기』『도망치기』『욕조』『사진기』, 장 에슈노즈의 『금발의 연인들』『일 년』『달리기』를 비롯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정체성』『거대한 고독』『고야의 유령』『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오니샤』『플로베르의 나일 강』 등이 있다.
서투르고 어수룩한 장의사들이 펼치는 한바탕의 소란, 코미디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냉소를 다룬 블랙유머! 어랫동안 사람이 죽지 않은 작은 마을, 셍장. 한때 '몇 사람쯤은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잘나가던 40년 전통의 '강그리옹 장의사'. 일거리가 없어 지루하고 맥빠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날 드디어 사망자가 생기고 가게 주인 강그리옹과 직원 조르주, 몰로는 오랜만에 장례일에 나선다. 관을 싣고 묘지로 향하는 영구차. 하지만 닳고 닳은 고참 조르주아와 마음 약한 몰로는 시체를 실은 채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꼬박 하루가 지났지만 시체를 묻을 묘지는 나타나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영구차는 시체를 길에 버려둔 채 어디론가 가고 마는데.
옮긴이 이재룡 교수(숭실대 불문과)의 말처럼 '시체 없는 장의사, 술 없는 카페'를 앞세운 이 작품은 '다른 것을 다른 식으로'라는 현대미학의 구호에 맞아떨어지는 신선한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조각가 안규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간명하고 재치 있는 삽화와 깔끔하고 산뜻한 편집, 장정이 '소란스러운 장례식'에 부담 없이 빠져들게 한다.
본문 중에서
생장이란 곳은 개는 바둑이, 고양이는 나비라고 불리고 교회는 <교회 광장>, 시청은 <시청 광장>에 있는 그런 마을 중 하나다. 이제는 인적도 뜸하고 볼거리도 남아 있지 않은 곳이다. 예전에 중앙로라고 불리던 대로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누가 페인트칠을 해주건 담뱃불로 지지건 사람이 앉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빈 벤치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가게도 서서히 숨이 끊어져가는 중이었다. 하나는 서너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다 말고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는 <태양 카페>이고 그것과 마주 보는 다른 하나는 음침한 간판을 단 조그만 가게 <장의사 에드몽 강그리옹과 그 아들>이다. 셍장이 제법 번창했고 무덤 파는 장사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산골 마을이었던 시절에는 호경기를 누렸던 적도 있었다. 근동에서 장례 치를 일만 생기면 누구나 <무통 매장>을 보장하는 강그리옹 장의사로 직행해야만 했다. 주문이 넘쳐서 몇 사람쯤은 제발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축복받은 시절에는 <장의사 에드몽 강그리옹와 그 아들> 가게의 말단 직원까지도 끼니마다, 심지어 새참까지 갈비를 뜯으며 살았다. 호시절이었다.
해가 갈수록 사정은 점차 악화되었다. 일거리가 줄어든 것은 경쟁 업체 때문이 아니라 죽는 사람 탓이었다. 치페 경기가 죽어 강그리옹에게는 치명적으로 일감이 딸리게 된 것이다. 셍장과 인근 마을에 인구가 격감해서 빈집에는 예전 손님의 영혼만 떠다니고 요새는 제 명보다 앞질러 죽는 사람도 드물었다. 산골에 남은 사람들에게 신이 베푼 은총이거나 혹은 그저 맑은 공기 덕분일 수도 있다. 마지막 손님은 그해 설날에 마지막으로 한 살 더 먹고 숨을 거둔 당시 최고령 노인이었고 그 후 몇 달 동안 눈물을 그렁거리며 가게 문턱을 넘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강그리옹은 이제 사업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느낌만확연해졌다. 사십 년 동안 항상 <사후>에 개입하는 직업에 종사하다보니 서서히 몰락하는 일에는 도무지 대처할 수 없었다. 그는 마무리형 인간이었기 대문에 희망이 깡그리 사라진 상황은 결코 두려워한 적이 없지만 그저 어렵기만 한 상황에 처하면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P.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