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절정에서 스스로 사라진 여배우를 찾아가는 이야기. '세계 지도에서 자신을 지우고 지하세계를 선택한` 그 여배우는 그같은 자발적 실종으로 인해 매스컴의 추적 대상이 된다. 이쯤 되면 현대 문명과 개인성의 대립을 다룬 작품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은 애매모호한 내면화의 길을 걷는다. 작가의 시점은 그 추적 과정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과 풍경에 주목하면서, 작중 인물의 희미한 내면 풍경을 독자들 의식의 수면 위로 띄운다. 작가의 전략은 추리 기법으로 독자들을 스토리 속에 밀어넣으면서 동시에 이 소설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의 내면 초상을 마주보게 하자는 것이다.
장 에슈노즈 (Jean Echenoz) - 1947년 프랑스 오랑주에서 태어난 장 에슈노즈는 사회학을 전공한 뒤 1979년 <그리니치 자오선>을 미뉘 출판사에 출간하면서 문단에 나타났다. 그는 대량 소비시대에 적합한 감동과 재미의 문학, 독자를 외면한 실험적 전위의 전형인 텔켈(Tel Quel) 문학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던 비평가들에게 프랑스 소설이 모색하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는 자기 소설의 뿌리를 추리소설이라고 밝히며 추리소설의 플롯이나 인물 묘사 기법의 매력을 강조한다. 인물이 사물과 맺는 관계, 교류, 거래 방식을 통해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에 더욱 흥미를 갖는 그는 내면 심리의 깊이를 제거하고 미세한 몸짓이나 짧은 대화의 편린에 인물 묘사를 의존한다. 1999년 <나는 떠난다>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역자 : 이재룡 195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숭실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꿀벌의 언어』, 옮긴 책으로는 조엘 에글로프의 『장의사 강그리옹』『해를 본 사람들』『도살장 사람들』, 장 필립 뚜생의 『사랑하기』『도망치기』『욕조』『사진기』, 장 에슈노즈의 『금발의 연인들』『일 년』『달리기』를 비롯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정체성』『거대한 고독』『고야의 유령』『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오니샤』『플로베르의 나일 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