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고백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장강명은 <수림문학상> <SF어워드 장편소설부문>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작가상> <심훈문학상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등단작이자, 만장일치 당선작으로 뽑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의 경우 “아무런 희망이 없는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겐 오직 죽음만이 희망이라는 주장을 담은 상당히 논쟁적인 작품”이며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세계, 과거와 현재, 높은 것과 낮은 것 등이 모순되지 않게 통합되는 정신적 지점이 있다고 본다”며 “당선자가 그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작가가 되길 기원한다”(황현산)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 평가는 <문학동네작가상>(“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죄의식의 경계를 독자적이고 탁월하게 표현했다”)과 <오늘의 문학상>(“속도감 있는 서사, 뛰어난 가독성, 사회의 문제적 징후를 포착하고 거침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에너지”) 수상에도 이어지며, 작가의 작품세계가 일괄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장강명은 이번 신작에서는 부부 관계와 가족의 문제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소설가이자 방송인, 칼럼니스트인 안시찬의 아내 이지수(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운영자)가 어느 토요일 저녁,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독감인 줄 알았던 아내는 검사 결과 뇌종양(신경교종)으로 밝혀지고,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이후 소설은 아내가 응급실에 실려 간 뒤 남편이 겪는 하루하루를 따라간다. 그는 하루 20분, 한 명만 허용되는 면회, 담당 교수와의 면담, 장모, 처제와의 소통을 감당하는 동시에, 이사 잔금, 대출, 아내 명의 통장의 비밀번호 알아내기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다. 관련 서류를 찾던 중 아내가 묵묵히 감당해온 방대한 업무 노트와 생활 원칙을 적은 ‘지수의 만트라’를 발견하고, 자신이 아내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난 몇 년간 아내를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다그치고 몰아붙인 것을 뼈아프게 후회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그는 책임감과 통제력 등, 자기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어머니와의 통화 끝에 신앙을 갈구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고통의 신이 아내가 아닌 자신에게 임하기를 기도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종양(신경교종) 발병 이후,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남편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삶의 무게를 발견하고 생사의 경계에서 뒤늦게 미안하다는 고백과 절절한 사랑을 전하는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하며 모든 통제가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사랑 앞에 무릎 꿇고 다시 서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가 그저 서성이는 데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결코 자신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진짜로?? 믿는 자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분명한 건 그가 이제 믿지 않는 자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섣부른 기대에, 낙관에, 절망에 타협하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는 이 서성임 속에서 “거대한 부조리”를 기록해내고야 말겠다는 이 소설가의 진심에 마음이 뭉클해지지 않기란 어렵다. 모쪼록 그의 간절한 기도가 모종의 응답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안지영(문학평론가)
표4
우리 사랑의 모든 것들……
아내는 아플 때 격렬하게 아픈 사람이었다. 아내는 기쁠 때도 격렬하게 기뻐했고, 슬플 때도 격렬하게 슬퍼했다. 우스운 일이 생기면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고, 분할 때에는 눈물을 글썽였다. 행복할 때는 남들보다 몇 배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대신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을 겪을 때에는 남들보다 몇 배 더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몰라. 웃겨. 아내가 대답했다.
뭐가 그렇게 슬퍼?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밀려와, 슬픔이. 아내가 대답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 그는 안개가 자욱해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한 바닷가 갯벌에 자신과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본문 중에서
작가의 말
지난해 아내가 갑작스럽게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쓴 이 소설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안시찬이라는 이름의 소설 주인공이 겪은 감정은 상당 부분 제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안시찬에게 일어난 사건, 또 안시찬 주변 인물들의 묘사는 많은 부분이 허구입니다.
(……)
아내가 며칠 전 두 번째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서성이다』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썼고 아내도 읽었습니다. 「작가의 말」은 병실에서 휴대폰으로 씁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제 아내 김새섬(김혜정) 그믐 대표를 위해 빌어주십시오.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2026년 여름, 장강명
본문 중에서
* 뭐가 그렇게 웃겨?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몰라. 웃겨. 아내가 대답했다.
뭐가 그렇게 슬퍼? 그는 아내에게 가끔 물었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밀려와, 슬픔이. 아내가 대답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 그는 안개가 자욱해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한 바닷가 갯벌에 자신과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23p
* 우리는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잖아.
아내는 가끔 그에게 그런 말을 건네곤 했다. 아내가 즐겨 보는 미국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남자친구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라고 했다. (……)
아내는 그 대사가 그들 부부의 가치관을 잘 설명해준다고 여겼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그게 우리잖아.
-61-62
* 머리가 좋은 소시오패스라면 겉으로는 공감 능력이 있고 정의를 지지하는 선량한 사람인 척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런 유의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는 관찰력과 그들의 반응을 예상하는 시뮬레이션 능력, 그리고 자신도 그들처럼 보이게끔 행동하는 연기력을 갖춰야 한다. 그가 판단하기에는 그 자신이 바로 그런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소시오패스였다.
-75-76p
* 악성종양인가요.
“물어보셨으니까 말씀드릴게요. 양성일 가능성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뇌종양은 종류가 다양해서, 악성 뇌종양 중에서도 얼마나 악성일지는 조직 검사 결과를 봐야 합니다.”
종양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짐작할 수 있나요.
“5, 6년씩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오래된 거 같지는 않아요.”
이게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건가요.
“환자분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요?”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줬습니다.
“뇌종양은 원인을 모릅니다. 왜 생기는지 저희가 알 수 없어요. 그냥 생깁니다.”
-187-188p
* 무서워. 너무 무서워. 못 걷겠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서성이고, 서성이며 울었다. 왜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 잃고 병에 걸리고 고통을 받고 죽어야 하는가. 인간은 고통을 받으려고 태어나는 걸까. 사람이 뭘 통제할 수 있고 무슨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213-214P
* 아니, 아니, 나는 이 고통을 기록해둘 거야. 이 희생을 치르고 내가 얻어야 할 성장 같은 건 없다고, 나는 누구의 뇌종양에도 결코 감사하지 않으며 신경교종이 존재하는 세상을 찬성하지도 않는다고 정확히 써놓을 거야. 그는 문학과 저널리즘에 종사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잘 알았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나르시시즘이냐. 그냥 몸부림쳐라.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러라. 먹은 걸 다 게워 낼 때까지 토하고 울어라……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합리화보다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욥을 괴롭힌 신의 이야기가 차라리 더 낫다. 부조리한 사건을 하찮은 이성으로 납득하려 들지 마라. 차라리 다른 부조리에 의지해라, 세상에 부조리가 꼭 한 종류는 아닐지도 모르니까. 거대한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 거대한 부조리일지도 모르니까.
―215P
* 그는 그 하늘 아래서 몸을 비틀며 펑펑 울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천변 도로에 우두커니 선 채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의 신, 고통의 신께 기도를 올렸다. 아내가 의식을 되찾게 해달라고, 예전의 총명함과 활기와 기억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고, 그보다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하지만 고통의 신은 그런 은총은 베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의 신은 기복을 거부하는 신인지도 몰랐고, 반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주제에 이제 와서 복을 비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는 다른 것, 복이 아닌 것을 빌었다. 욥이 걸렸던 피부병 대신 신경교종에 걸리기를 빌었다. 자기 뇌에서 종양이 자라나기를 바랐다.
-224-225p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쉰아홉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분기별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2026년 첫 출간되는 057번부터는 기존 6권, 4권 단위로 한 명의 표지 작가의 작품으로 묶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권 한 권이 한국 문학의 대표성을 가지는 것으로 새롭게 큐레이션되고, 기존 25일이던 출간일을 5일로 바꿔 내놓는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풀업』(2023년 8월 25일)
049 김지연 『태초의 냄새』(2023년 10월 25일)
050 이장욱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2024년 1월 25일)
051 김 솔 『행간을 걷다』(2024년 4월 25일)
052 김멜라 『환희의 책』(2024년 7월 25일)
053 안보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2024년 10월 25일)
054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2025년 1월 25일)
055 박지영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2025년 7월 25일)
056 위수정 『fin』(2025년 10월 25일)
057 문지혁 『나이트 트레인』
058 조해진 『우리 세희』
059 장강명 『서성이다』
060 이주혜(근간)
061 백온유(근간)
062 김홍(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