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그 세 번째 이야기!
“개인의 기억에서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으로”
2016년 8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현재와 과거를 조명한 『한 명』, 2018년 7월, 위안소에 살고 있는 임신한 열다섯 살 소녀의 삶을 그린 『흐르는 편지』에 이어 김숨의 ‘위안부’소설 그 세 번째로 ‘위안부’피해자의 직접 증언을 바탕으로 한 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두 권을 선보인다.
이 두 소설은, 현재 살아 있는 분들 가운데에 길원옥, 김복동 두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쓴 한 나라의 불행한 역사의 이야기이며, 꽃다운 나이에 삶을 통째로 유린당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1인칭 소설로 화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 작가의 의도는, 이 생에서 그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한 채, 고통의 세월에서 상흔의 부적만 겨우 간직하고 살아남은 자 ―이미 늙고 병든 이―의 증언의 형식보다 더 강력한 리얼리티로 생생한 현장성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껏 선명하게 기억하는 허약했던 나라의 역사, 그 치부를 말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나라를 위해 그들이 치룬 무차별적인 희생에 대한 무관심과 냉혹한 시선을 사실감 있게 전달한다. 나아가 삶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연민이 없는 사회의 굴곡진 현 사회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야말로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과 함께 이들의 헌신과 늦었지만 이들이 느낄 수 있을 살아 있음의 기쁨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이 소설들은 그렇게 살아 있는 목소리로 들려준다.
홀로–여럿의 주체가 된 삶이자, 역사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 존재의 경험과 기억
8월 14일 기림일에 맞추어 출간된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의 화자 김복동은 열다섯 살에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시 대만, 광동, 홍콩, 수마트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끌려다니며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다 스물두 살에 싱가포르에서 해방을 맞았고, 자신을 찾아온 이종 형부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가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던 김복동 앞에 놓인 현실은 그러나 녹록하지 않았다.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함바집, 횟집 등에서도 험한 일을 하면서도 새벽마다 절을 찾았다. ‘위안소’에서 맞은 606호 주사 탓에 불임이 될 줄도 모르고 아이를 갖게 해달라 끝없이 기도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죄책감 때문에 마음 놓고 남자를 사랑할 수 없어 37년이나 함께 산 남자가 있었음에도 평생 혼자 산 것만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위안부’로 농락당하고 훼손된 자신의 7년의 세월이 이후 자신의 삶을 ‘혼자’인 것으로 만들었다 말한다. 김복동은 평생 외로웠고 평생 쓸쓸했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예순두 살에 ‘위안부’로서의 삶을 고백했으나 이후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가족들의 외면이었다.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 나를 찾고, 더 쓸쓸해졌어.“
“다 같이 살고 싶어……. 밭도 일구고, 논을 사서 벼농사도 짓고……. 그런 공상을 할 때는 죽음이 멀리 달아나.”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침묵한 탓이었다. 개인의 소중한 삶이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리도록 방기한 결과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니 가족마저 외면했던 것이다.
이미 김복동은 스물세 살 때 『전생록』을 가졌다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물은 적이 있다.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지. 할아버지는 김복동이 전생에 옥황상제의 딸이었고, 자식을 다 죽인 벌로 먼 땅으로 쫓겨났다고 이야기한다.
“이해할 길이 없었어. 전생이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아니면, 내가 겪은 일들을.”
김복동은 전생에서 답을 구했다. 전생으로 둘러대지 않고서는 현생에서 벌어진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박제가 된 역사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혼자 묻고 혼자 답해온 것을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함께 묻고 답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 존재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내야 한다.
“다들 모른다고 말해도 나는 알아. 내가 겪은 일을 나는 알아. 잊은 적 없어.”
▲ 작가의 말 중에서
연초 김동희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신데, 더 나빠지시기 전에 할머니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간곡한 바람을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20년 가까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분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했던 권리와 존엄성 회복을 위해 성실히 활동가로 살아온 그녀였습니다.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준 친할머니가 편찮으시기라도 한 듯 그녀는 눈과 코가 빨개지도록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증언 활동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해오신 할머니께 서 지금껏 들려주지 않으셨던 이야기를 끌어내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보자, 김동희 선생님의 눈가장에 고인 눈물을 바라보며 저는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찾아뵌 날, 할머니는 항암약을 드시고 홀로 누워 싸우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영혼과 기억과…….
▲ 작품해설 중에서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진상규명과 책임 규명을 위해 평생 싸워온 김복동의 이야기를 소설가 김숨이 묻고 답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서 소설로 창작한 작품이다. 자신의 삶을 구술하는 이는 통상 ‘내 삶은 이러이러했다’거나 ‘그때는 저러저러한 일이 있었지. 그랬던 것 같다’라고 진술한다. 부정확한 기억이나 모호한 사실 관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구술자는 자신이 회고하는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 그런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구술하는 김복동의 방식은 그런 의미의 주인 됨이나 주체 자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 왜 이런 주체 양태가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물음’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왜 내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인가?’ ‘그 일을 피할 수는 없었나?’와 같이 자신이 겪은 폭력의 원인과 이유를 묻는 물음 말이다.
— 권명아, 「작품해설」 중에서
▲ 본문 중에서
볼 수 없어도
바다가 그리워.
볼 수 있는 걸 그리워하는 건 그리워하는 게 아니야.
아니면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이거나. 병病이 되도록.
갈 수 있겠지……. (p. 32-33)
진실로,
알아야 해.
손이 모자란다고 했어.
군복 만드는 공장에 손이 모자라서 내가 가야 한다고.
그때 내 나이가 열다섯. (p. 36)
나는 감정이라는 걸 몰라.
외로움 같은 거 안 느껴, 못 느껴.
나 외로운 건 못 느끼는데,
남 외로운 건 느껴.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져. 맡고 싶지 않아도 맡아지는 냄새처럼.
외로운 사람을 보고 있으면 힘들어.
그래서 눈이 멀었을까. (p. 43)
처음에 내가 엄마에게 말했을 때 거짓말이래.
그런 일을 겪고 사람이 살 수는 없다며.
그런 일, 내가 겪은 일.
나는 알아
내가 겪은 일을 잊은 적 없어. (p. 44-45)
어느 날 동네 구장하고 반장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 누런 옷 입은 일본 사람을 데리고.
그들이 엄마에게 말했어.
“데이신타이에 보내야 하니 딸을 내놓아요.”
“이 집에는 아들이 없으니 딸이라도. (p. 48-49)
엄마가 끝까지 거절을 못 했어.
그래도 엄마를 원망할 수가 없어.
딸을 내놓지 않으면 배급이 끊기니까.
그들이 그랬어.
“반역자가 되고 싶어요?”
“딸을 내놓지 않으면 고향에서 못 살 줄 알아요.”
그래서 내가 가겠다고 했어.
군복 만드는 공장이라는데 죽기야 할까 싶었어. (p. 50)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없어, 일생을
…….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 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 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 없는. (p. 63)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는 산 너머 군부대로 출장을 가기도 했어.
그곳 산은 높지 않고 비스듬하니 길고 깊었어.
여자 여남은 명이 함께 갔어.
총을 든 군인들이 우리 앞에도, 뒤에도 있었어.
군인들이 천막으로 임시 위안소를 만들고 우리를 기다렸어.
합판으로 짠, 관
棺 같은 곳에 들어가 군인을 받았어.
개구리처럼 두 다리를 오그리고 군인을 받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인들이 천막을 들추고 소리치고는 했어.
빨리빨리!
저녁이 되면 두 다리가 콘크리트 기둥처럼 굳어서 펴지지 않았어. (p. 102-103)
나는 집이 없어,
밤마다 집을 지어.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다들 잠든 시간에.
내가 지은 집들은 봄날 나비와 같아, 날아가버려…… 내가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면.
벽돌 한 장 없이 지은 집이어서.
어제도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그래도 잠이 안 와서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p. 104-105)
군인들에게 끌려다닐 때,
나는 나를 찾지 않았어.
해방되고 다들 나를 찾을 때도,
나만 나를 찾지 않았어.
나 없이 살았어, 나 없이……. (p. 135)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F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p. 136)
내가 싸우고 있어…….
믿을 데가 없어…….
의지할 데가 없어…….
죽을 복.
자다가 고통 없이 죽는 거…… 그거 하나 바라…… 몸이 너무 고달프니까…… 정신이 나가 허우적거리는 병이 올까봐 두려워…….
내 나이 아흔셋…… 전생에 지은 업보는 다 치른 것 같아…….
업보를 짓고 싶지 않아, 마음으로도.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아.
금방 끝날 줄 알았어…….
용서하고 떠나고 싶어.
번개처럼,
한순간. (p. 162-163)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겠어.
형제도 못 믿는 내가 누구를 믿겠어.
너른 밭이 있었으면…….
내 뒤에 아무도 없어. (p.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