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의 작가 이신조의 두번째 창작집. 작가는 등단 후 두 권의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출간하며, 감각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삶과 세상을 읽는 새로운 방식을 견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소설집 역시 작가의 디테일한 분석과 냉철한 안목은 여전하며, 특히 이번 소설집은 현실세계를 그린 작품과 가상세계를 그린 작품이 작가의 적절한 안배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따스한 품을 경험할 수 없는 전형적 도시 이혼 가정의 사춘기 소녀 재인의 이야기 「새로운 천사」, 자기 정체성 찾기의 여정을 담은 환상소설 「그 여름, 요양소에서 마녀와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온 가족을 잃고 보상금과 보험금을 받아 여기저기 중고차를 사서 속도를 즐기는 스물두 살 희영의 이야기 「길의 레슨」,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여자 마술사의 이야기 「카드의 여왕」등 8편의 단편을 담았다.
■ 이 소설집은… 신예작가 이신조의 두 번째 창작집 『새로운 천사』가 현대문학 창작선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신조 씨는 등단 후 두 권의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출간하며, 감각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통한 삶과 세상을 읽는 새로운 방식을 견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소설집 역시 작가의 디테일한 분석과 냉철한 안목은 여전하며, 특이할 점은 이번 소설집은 현실세계를 그린 작품과 가상세계를 그린 작품이 작가의 적절한 안배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욕망과 태도(혹은 존재 방식)에 관한 사유를 섹스에 견주어 고찰하는 방식을 택한 뒤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집의 첫 작품 「미혹」은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결론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멜로드라마처럼 우연과 필연이 뒤섞이며 이야기가 구성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되고 있다. 주인공 송혜주는 어머니의 재혼이 부담스럽다. 어머니 재혼 상대가 자신의 연인인 T의 아버지. 재혼을 위한 상견례 장소에 나갔다가 얼마 후 T와 헤어진다. 이별의 이유는 어머니의 재혼도 T가 싫어진 탓도 아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내 전부를 사용'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 사이 재혼한 어머니는 아버지와 여행을 떠났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그리고 그녀는 T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어느 해변가로 잠적하여 해산일을 기다린다. 그것은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도 되지만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기다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오해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하여 가끔 이해받는 것으로 살아남는다. 죽음을 유예한다.”라는 본문 중의 말은 그 기다림의 고단함을 짐작시킨다. 「그 여름, 요양소에서 마녀와 나는」은 환상소설 형식을 갖춘 자기 정체성 찾기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나'는 ‘북산' 아래 ‘사우스 시티'에 살고 있다가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산 정상에 위치한 요양소에 입원된다. ‘나'는 요양소에서 온갖 비현실적인 인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특히 그곳에서 마주친 마녀는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한 인도자. ‘나'는 요양소의 산파수업과 꿈의 주간을 마치고 산정의 휴화산의 분화구 속에 던져진다. 거기서 나는 칼로 베어버리는 고통을 느끼며 등으로 잠자리를 낳는다. 거추장스러운 무게의 육체를 버린 잠자리, 나는 잠자리의 ‘어리고 연약한 날개'와 함께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만 할 요양소를 떠나 자신이 살던 사우스 시티로 돌아온다. 표제작 「새로운 천사」는 장국영과 춤추는 꿈으로 시작된다. 초경을 시작한 재인은 이혼한 변호사 어머니와 작곡가 아버지를 둔 중학교 소녀. 재인은 어머니 집과 아버지 집을 오가며 생활하며 이혼한 부모를 그런대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따스한 품을 경험할 수 없는 전형적 도시 이혼 가정의 사춘기 소녀. 누군가 만나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심지어 친구와 부모와의 만남도 거의 ‘전화'를 통해서 이루질 뿐이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불안과 자기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는 불안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재인은 이렇게 독백한다. “오늘 생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트 21층에서 떨어지며 울리는 핸드폰, 그리고 실족. 재인이 사랑한 것은 모두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만날 수 없는 것들 뿐,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재인은 현실로부터 실족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길의 레슨」은 교통사고를 당해 온 가족을 잃고 보상금과 보험금을 받아 여기저기 중고차를 사서 속도를 즐기는 스물두 살 희영의 이야기. 그녀가 속도를 즐기며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는 어떰 목적지를 위해서가 아닌, “아무 곳에도 도착하고 싶지” 않은 때문이다. 전국을 떠돌다 한동안 머물게 된 해변 호텔에서 만난 디엠 김이라는 신입 웨이터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사고를 맞는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카드의 여왕」은 앞의 작품들과 달리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인 여자 마술사가 등장한다. 자기 안의 열정과 혼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나간 뒤 홀연 마술사가 되어 귀국한 사촌 이모 조미숙. 저자는 이 마술사를 통해 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 조미숙은 군중을 압도하는 아우라, 동시에 ‘이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태도'를 가진 여왕다운 당당함을 가진 여자.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산다는 것, 자유분방하게 열정적으로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마치 환상 속의 이야기처럼 요원하다. 때문에 작가는 마술이란 장치를 차용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살아가는 것, 그 아름다운 마술의 방법을 이신조 씨는 이 소설집에서 매우 섬세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사랑이든 상처든 아이든, 여자는 일단 키우려드는 존재다. 불리하게도. 그녀는 ‘불리한 여자'로서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도록, 혼자, 깊이, 부질없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현명한 판단'이라 미화되는 모든 것들을 낱낱이 뒤집어 보았다. 역시 부질없이. ―「미혹」39p 휴화산의 분화구 속, 폭풍우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등으로 잠자리를 낳았다. 산파는 없었다. 시뮬레이터의 자궁을 통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등으로 잠자리를 낳았다. 욕창의 상처가 갈라지면서 딱지가 떨어지고 피와 고름이 흘렀다. 오랜 시간 고름 속에 박힌 채 안타까운 노력으로 구더기는 힘겹게 허물을 벗고 날개를 폈다. 그리고 내 등을 빠져나왔다. 내가 그렇게 했다. 희미한 그물무늬의 연약하고 투명한 두 쌍의 날개는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여름, 요양소에서 마녀와 나는」86p 그는 서둘지 않고 차분하고 사려 깊게 나를 이끈다, 그의 귀가 성냥처럼 내 이마를 긋는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당황한다, 당황하고 만다, 나는 사로잡힌 것이다, 음악에, 춤에, 이 돌연한 감정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확신에 차 바닥을 디디는 발끝, 두근거리는 탱고, 이해할 수 없다, 황홀하다, 그리고 아프다, 찢기듯이 가슴이 아프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데없이, 괜찮아, 그가 말한다, 괜찮아, 나는 춤을 출 줄 모르면서도 춤을 멈추지 못한다, 이럴 수가, 나는 그를 사랑한다…… ―「새로운 천사」95p 그녀는 다시 오래도록 길을 달린 것이다. 길 위에서 많은 날들을 흘려보내고 달력을 뜯어 차창 밖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그녀다운 일이길 바란다. 낯선 무언가가 결국은 익숙한 것이 되고 마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그녀는 문득 도시에 도착하면 카메라를 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길의 레슨」178~179p ■ 작품 해설 중에서 고전적인 엄격함과 본능적인 차가움의 이면에 끊임없이 이를 흩어놓고 부정하는 온갖 모순어법의 분열이 정묘한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이신조의 소설집에는 함부로 이해받은 자의 슬픔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번역이 오역이라면 이 불행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깊은 슬픔은 자기정체성의 문제로 연결되면서 역설적으로 사랑받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는 거의 순진할 정도의 강렬한 염원으로 다가온다(「도시학습」의 남세령처럼 작가의 낭만적인 소망을 드러낸 인물도 없다).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상처받을 이유도 없다. 우리는 갑각류의 껍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순정한 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는 애써 안쓰러운 마음을 다독이며 물어보는 것이다. 그걸 감추기 위해 그렇게 악을 쓴 거니, 고집불통 앨리스! 유머와 능청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접근 자세 역시 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