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브 그리예의 『질투』와 사르트르의 『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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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그렇다면 시인 정현종은 과연 사물들과의 행복한 교감交感에 이르렀을까요? 그 질문은 이 자리에서는 접어두려고 합니다. 내가 그의 시 한 수에 언급한 것은 다만 존재의 참을 깨달으려는 지향志向의 한 가지 예를 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있음 직하게 만들기의 수법에 따라 독자를 낯익은 세계로부터 낯선 세계로 슬그머니 유인하는 수법을 쓰지 않고, 도리어 흔해빠진 것을 갑자기 낯선 것으로 만들어 놀라게 하는 수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슴거울이 앎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매우 다르지만, 그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제2의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이런 수법은 오직 시의 경우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반드시 은유적·상징적 언어를 주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며 일상적이기조차 한 체험, 그러나 우리가 미처 자각自覺하지 못했던 체험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령, 로브 그리예라는 작가의 소설 질투는 분명히 일상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적고 있으면서도 그 언어는 처음부터 낯섭니다. 그 이야기는 정부情夫를 가진 아내에 대해 질투하는 남자에 관한 기술인데, 그의 심리도 내력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을 열자마자 엉뚱하게도 한 테라스의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의 각도에 관한 화자의 세밀한 관찰의 기록과 만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질투라는 감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독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 리얼리즘에 익숙한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륜의 관계의 시작, 눈치챈 남편과의 다툼, 그의 괴로움, 불행한 결말 따위를 기대할 겁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질투가 가져오는 그런 사건들이 아니라 질투 그 자체의 현상학現象學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질투의 현장의 기록, 즉 아내의 행동과 그 행동이 벌어지는 장소(그런 장소의 하나가 바로 테라스입니다)에 대한 자세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질투의 연원淵源은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사물과 인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눈앞에 나타나는 영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질투의 핵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변변한 이야기 줄거리도 없는 이 야릇한 소설에서, 어느 다른 소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질투의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그 반면에 우리가 기본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이 매우 엉뚱하게 전개되고 존재의 문제 한복판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구토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하도 유명한 소설이라서 여러분 중에도 이미 읽어본 사람이 있겠지만, 그 시작은 있음 직한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어느 지방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중년의 총각선생의 일기가 그 내용입니다. 그런 교사가 있는 것도 또 그가 일기를 쓴다는 것도 극히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기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히 일상적인 일의 기록이 아닙니다. 하기야 주인공은 단골 카페에서 식사도 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또 가끔 그 여주인과 육체관계도 갖고 하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사물에 대해서 공포에 가까운 야릇한 느낌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낯익은 세계에 낯설고 기분 나쁜 세계가 들어앉아 낯익은 세계를 잡아먹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하나의 조약돌의 징그러운 감촉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메스꺼움은 다른 물건들로, 사람들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로,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존재로 번져나갑니다. 정현종의 거울과는 정반대로, ‘와의 조응照應이 전혀 없는 곤죽 같은 사물들, 아무런 존재 이유 없이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는 크고 작은 괴물들 앞에서 그는 절망에 빠집니다. 이리하여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정말로 자신의 존재를 비롯하여 이 세상에는 뜻이 없고,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헛된 관념에 속아 산다는 것인가? 만일 그것이 참이라면, 그 끔찍한 참 앞에서 구원은 없는 것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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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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