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도 아라타天童荒太
“이야기의 힘을, 지금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를 대단히 고심하며 씁니다.”
일본 문단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며,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과 현대인의 정신적 어둠을 주로 다루어 온 작가 덴도 아라타는 1960년 에히메 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교 문학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본명은 구리타 노리유키.
동화와 시나리오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공모전에 응모하여 1986년 「이상한 별 내리는 낙원섬」으로 제3회 안데르센 메르헨 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하얀 가족」으로 제13회 야세이지다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고, 이후 여러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다가 덴도 아라타라는 필명으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1994년 『고독의 노랫소리』가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의 우수작으로 선정되고, 1995년 『가족사냥』으로 제9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1999년에는 『영원의 아이』로 제121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는데, 이 작품은 ‘1999년 일본 문단 최대의 사건’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였으며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2000년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 및 연작 단편집 부문에서 수상한다. 같은 해에 『넘치는 사랑』으로 제124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고, 2009년 『애도하는 사람』으로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140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문단으로부터 ‘21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받은 이 작품은 제6회 일본서점대상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환희의 아이』로 제67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문학ㆍ예술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에히메 현 문화ㆍ스포츠상을 두 번째로 수상한다.
등단 이후로 줄곧 힘들고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써 온 덴도 아라타는 『환희의 아이』를 출간하면서 “살아 있으면 사람은 괴로운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작가가 한 명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 권이나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니 정말 중요한 것을 정말 소중히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환희의 아이』가 유작이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작가로서의 중기中期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 『환희의 아이』는 이전의 작품에서 현대인의 살아 나가는 고달픔을 응시하여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써 왔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가는 힘에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덴도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옮긴이_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에서 강의하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 옮긴 책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풀베개』,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명과 영혼의 경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상ㆍ하), 가사이 기요시의 『바이바이, 엔젤』, 사사키 이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정신의 기원』『트랜스크리틱』『탐구』(전 2권),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전 3권),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 등이 있다.
『영원의 아이』『애도하는 사람』을 거쳐 덴도 문학은 여기까지 진화했다
제67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문학ㆍ예술 부문 수상작
거액의 빚을 진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어머니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의식불명 상태로 자리보전하게 된다. 비좁고 악취 풍기는 공통주택에 남겨진 세 아이는 어른들에게 외면당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빚을 갚으며 하루하루 버텨 나간다.
일본 문단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며,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과 현대인의 정신적 어둠을 주로 다루어 온 작가 덴도 아라타의 신작은 앞이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고 하는 아이들을 그렸다. 문예지 『파피루스』 29호(2010년 4월)에서 44호(2012년 10월)에 걸쳐 연재된 장편소설을 두 권의 단행본으로 묶은 『환희의 아이』(2012)가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는 제14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애도하는 사람』 이후 4년 만의 작품이다.
“이전의 『애도하는 사람』에서 사람의 죽음과 철저히 마주한 후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살고자 하는데 삶을 배척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럼에도 살아 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담아내자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있었습니다.”(『주간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환희의 아이』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가 열여섯 살 때 노트에 적어 두었던 시나리오 소재가 원형이라고 한다. 스물다섯 살 때 이를 단편소설로 써서 『야세이지다이野性時代』 신인상에 응모했고, 당선되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를테면 이 이야기가 지금의 덴도 아라타를 있게 한 셈이다.
“학대와 죽음을 다룬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비슷한 일을 경험한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부 쏟아 내고자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쌓아 온 소설의 기술도 문학적인 상상력도 모두 동원하여 써 내려갔습니다.”(『주간문춘』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작가로서의 중기中期의 시작’이라고 명명한 『환희의 아이』는 이전의 작품에서 현대인의 살아 나가는 고달픔을 응시하여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써 왔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가는 힘에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덴도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한 해 동안의 우수한 출판물에 주어지는 마이니치출판문화상 문학ㆍ예술 부문에서 2013년 수상했다.
등단 이후로 줄곧 힘들고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써 온 그는 『환희의 아이』를 출간하면서 “살아 있으면 사람은 반드시 괴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작가가 한 명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 권이나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니 정말 중요한 것을 정말 소중히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환희의 아이』가 유작이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차별, 배신, 빈곤, 테러, 전쟁……
이 잔혹한 세계에서 인류는 왜 멸종되지 않는 것일까?
열일곱 살 첫째 마토코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노부미치가 진 거액의 빚을 갚아 나가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전에는 청과물 시장에서, 오후에는 중화요리 전문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각성제를 제조하는 부업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열두 살 둘째 쇼지는 자리보전하는 어머니 아이코의 수발을 들고 형을 도와 각성제를 제조하느라 자신의 일은 뒷전이어서 교사와 반 아이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유치원생인 다섯 살 셋째 가오리는 아무도 없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때때로 몸이 부자유한 흉내를 내고, “구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런 세계에서 누군가를 믿을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절망은 깊다. 차도가 없는 어머니, 늘어만 가는 빚,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초래된 현실은 육체적인 결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코토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음을 듣지 못하고, 쇼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색을 보지 못한다. 가오리는 향기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오로지 악취만을 느낀다.
그러나 『환희의 아이』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이는 그들만이 아니다. 쇼지-마토코-가오리-노부미치ㆍ아이코의 순으로 한 장章씩 번갈아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시너를 팔면서 아버지가 진 빚을 갚는 얀즈, 전쟁으로 포로가 되었다가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일본으로 건너온 아름다운 소년 루슬란,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소녀 가데나 등 단지 살아 있음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등장인물들이 압도적인 현실감을 띠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자신한테 돌아오거든. 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은 하는 게 아니야.”
마코토가 갈 곳을 잃은 발을 천천히 내리고 무릎을 치신없이 까부는 것처럼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말 돌아올까?”
마코토가 말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돌아온다면 인간은 진작 멸종되지 않았을까? 개미나 동물에게만 그런 게 아니야. 인간끼리 서로 짓밟는 일을 한다거나 돈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하고, 당하는 게 싫은 것만 흘러넘치고 있잖아. 그런데 왜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건지 참 이상해.”
_ 2권 146~147쪽, 멀어지는 소원
이들은 차별, 배신, 빈곤, 테러, 전쟁 등이 횡행하는 잔인한 세계에서 인간이 왜 멸종되는 않는 것인지 저마다의 목소리로 묻는다. 이에 대한 덴도 아라타의 답은 바로 ‘무리’이다. 가오리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코토에게 치타가 왜 임팔라를 바로 덮치지 않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마코토는 떼로 모여 있기에 덮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얼마 후 임팔라 새끼 한 마리가 무리에서 뒤처지고 결국 치타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이 나온다. 가오리는 치타 앞의 임팔라 떼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흩어져서 도망치면 잡아먹히며, 그렇기에 늘 무리 지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덴도 아라타는 제목 ‘환희의 아이’에서 ‘아이’에 해당하는 단어로, 동물의 새끼를 가리키는 ‘仔’를 사용했다. 그는 동물의 새끼가 무리 지어 있어야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듯이 인간 역시 무리 짓지 않고서는 위기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약자는 서로 손을 맞잡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강조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채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세 아이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지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각자에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 무리를 이루게 되고 나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현실은 또다시 사정없이 덮쳐 오며 이야기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상상하지 못한 결말을 향해 간다.
■ 추천사
고된 삶을 짊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편소설. _《아사히 신문》
어둠 속에 불을 밝히는 최강의 동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이전보다 훨씬 깊이 추구하고 아울러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_마쓰다 데쓰오(출판평론가)
테러나 폭동이 횡행하는 살벌한 세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지, 그 해답을 이 아이들이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세계적 규모의 힘을 지닌 작품. _나카쓰지 리오(문예평론가)
무거운 작품이지만, 질주하는 주인공을 쫓아 같은 속도로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달려 나간 끝에 펼쳐지는 아이들 앞의 풍경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결말. 그것은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희망의 빛이다. 틀림없이 황홀하리라. _《교도통신》
이들의 드라마를 현대 일본의 빈곤의 우화로 읽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독서이리라. 여기에는 아이들의 ‘비참함’이 단지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고한 환기력이 있다. 『환희의 아이』의 작가는 이야기의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 것 같다. _《니혼케이자이 신문》
■ 책 속으로
발끝에서 힘이 빠져 세숫대야를 바닥에 놓고 주저앉는다. 지금까지 울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쓰러져도 울지 않았는데, 무시해도 좋았던 자신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뜨거운 꿀이 끼얹어진 것처럼 얼음이 녹아 가슴에서 흘러넘친다. 소리를 낼 뻔했다. 안 된다, 여기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다.
반쯤 열린 쇼지의 입가에 루슬란이 구부러진 팔뚝을 내밀었다. 역광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쇼지의 이에 팔뚝을 바짝 댄다. 그의 마음이 전해져서 호의를 받아들여 팔뚝을 물었다. 물고 소리를 죽여 마음껏 울었다.
무척 아팠을 텐데도 팔뚝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쇼지에게 맡긴 채 있어 주었다. 치아 아래의 부드러운 감촉이 왠지 정겹고 따뜻하다. 복받치는 것을 모두 그의 팔뚝에 발산하고 울면서 난생처음 죽음을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다.
_ 1권 173~174쪽, 「투명 소년」
“그만둬. 전부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 나는 너희 마음속에 있는 바람을 이루게 해 주려고 했을 뿐이야. 아이코 씨를 나한테 소개한 것은, 벨라한테 그녀에 대해 알려 주기를 바랐기 때문 아니었어? 두 사람만으로는 결혼하기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은 너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날 끌어들였지. 이번에도 장래를 위해 부자 고객한테 좋은 평가를 얻고 싶어서 내 이야기에 응한 거고. 그런데도 뭔가 잘못되면 다 내 탓이야? 선인일수록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이 선택했으면서도 실패하면 책임을 누군가한테 덮어씌우지.”
어둠 속에 숨은 사촌 형의 얼굴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쓴웃음의 숨결이 들려왔다.
“노부미치. 나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너희의 어두운 욕망의 분신 아닐까?”
_ 1권 306~307쪽, 「얽매인 사랑」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아직 어슴푸레하고 십자가에 매달린 남자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다.
“그래요. 배신할 거예요…… 배신해 줄 거예요.”
“주님을요?” 목소리가 묻는다.
“아니요. 저를요……. 저는 저를 배신할 거예요.”
_ 1권 345쪽, 「배신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