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악의』에서 냉철한 추리력과 뜨거운 가슴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가가 형사, 그의 또 다른 활약상이 펼쳐지는 소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가가 형사는 시리즈 캐릭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례적으로 20년 넘게 애정을 쏟으며 성장시킨 캐릭터이다. 끔찍이 사랑하는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증거까지 은폐하는 현직 경찰과 그를 막는 가가 형사의 대결. 게다가 용의자는 둘밖에 되지 않는다. 다소 심심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은 “독자가 추리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추리소설”이라는 작가의 신조에 따라 의도적으로 범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독자는 탐정의 입을 빌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놀라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역할을 박탈당한 것이다. 이제는 직접 나서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당신은 누가 범인인지 알아낼 수 있겠는가! 『용의자 X의 헌신』 출간 당시, 미스터리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진 뜨거운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본격미스터리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 지은이 _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 1999년 『비밀』로 제5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인간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성의 인연』『악의』『붉은 손가락』『숙명』『백야행』『살인의 문』『편지』『흑소黑笑 소설』『독소毒笑 소설』『방황하는 칼날』 등 다수의 저서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로 당연히 일본 미스터리계의 제일인자이며, 미스터리라는 틀로 묶을 수 없을 만큼 폭넓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 옮긴이 _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2005년 소설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슬픈 이상李箱』『그리운 여성 모습』『글로 만나는 아이세상』 등의 책을 썼으며, 『유성의 인연』『악의』『붉은 손가락』『남쪽으로 튀어!』『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겐지와 겐이치로』『철도원』『칼에 지다』『지금 만나러 갑니다』『장송』『플라나리아』『오, 마이갓』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이 책은… 복수를 맹세한 현직 경찰과 그를 막으려는 가가 형사, 그 숨 막히는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지방 경찰서에 근무하는 야스마사는 어느 날, 도쿄에 사는 여동생 소노코로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며칠 뒤, 이상히 여겨 찾아간 소노코의 집에서 야스마사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동생의 시체. 현장 증거를 통해 동생이 살해당했다고 확신한 그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자살로 보이게 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고 현장 물증을 빼내기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스마사는 용의자를 둘로 줄인다. 여동생의 옛 연인, 아니면 오래된 친구.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 보면 다소 의문스럽다. 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치고는 조금 단순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리에 방해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겠다는 작가의 엄밀한 계산에 따른 것. 작가는 단순하면서도 교묘한 구성으로, 평범한 추리 게임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작품을 창조한 것이다. 일본 출간 당시, 범인이 누구냐는 문의 전화로 출판사를 마비시켰던 문제작! 분노에 불타오르는 오빠와 그를 막기 위해 나선 가가 형사, 그리고 두 용의자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시종일관 긴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드디어 둘 중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가 밝혀지려는 결정적인 순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가는 일부러 범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결정적인 단서를 독자가 직접 찾아내도록 한 것이다. 독자라는 존재가 정말 ‘추리’를 하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중심에 공백을 둠으로써 독자의 상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던 히가시노 게이고이기에 가능했다. 일본에서 출간될 당시, 출판사로 범인이 누구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이 작품은, 동시에 출간되는 『내가 그를 죽였다』와 함께 독자가 직접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야만 하는 궁극의 본격미스터리이다. 작가는 현재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라는 타이틀로 한 단계 발전된 소설을 구상 중이라 하니 이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 작품의 줄거리 도쿄에서 홀로 직장 생활을 하던 소노코, 그녀가 어느 날 오빠 야스마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을 당했다며 그다음 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는다. 끔찍이 사랑하는 동생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느낀 경찰 야스마사는 그녀의 집을 찾았다가 싸늘하게 식은 동생을 발견한다. 사건 현장에서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직감한 그는 증거를 은폐하면서까지 복수를 맹세, 독자적인 현장 검증을 통해 용의자를 둘로 좁힌다. 하나는 여동생의 가장 가까운 친구, 또 하나는 옛 연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삶의 희망을 잃고 복수심에 이성을 잃어가는 오빠와 그의 복수심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가 형사. 시간이 가면서 감춰졌던 증거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사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러고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범인의 정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이제 당신의 몫으로 남는다. ■ 가가 교이치로, 그가 궁금하다 냉철한 머리, 뜨거운 심장, 빈틈없이 날카로운 눈매로 범인을 쫓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잃지 않는 형사 가가 교이치로. 때론 범죄자조차도 매료당하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제일인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그의 작품 속에서 함께해왔다. 가가 교이치로가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바로 청춘 미스터리 소설 『졸업』이다. 교사가 될 꿈을 품은 평범한 대학생이던 가가는 친구들의 연이은 죽음을 접하며 인간의 양면성과, 사건 해결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형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에 소홀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고 생각한 가가 교이치로는 형사라는 직업 대신, 교사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평범한 교사로 머물게 두지 않았다. 가가 교이치로는 재직 중 어떤 사건으로 인해(자세한 내용은 『악의』에서 밝혀진다) 자신이 “교사로서는 실격”이라 판단하고 사직, 경찰에 입문한다. 가가 교이치로가 다른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가 형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다정함과 최고의 선을 향한 인간적인 배려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범죄자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가가 형사가 “인간의 심리를 가장 완벽하게 꿰뚫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추리소설을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사랑하는, 살아 있는 캐릭터인 이유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졸업』을 시작으로 『잠자는 숲』『악의』『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내가 그를 죽였다』『거짓말, 딱 한 개만 더』와 나오키상 수상 이후의 첫 작품 『붉은 손가락』까지 총 7권이 출간되었다. ■ 본문 중에서 ‘내가 죽으면 아마 가장 좋을 거 같아.’ 그 말을 듣고 오빠는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다. 못할 소리를 했다고 소노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솔직한 심정이었다. 준이치든 가요코든 둘 중 누군가-. 소노코는 불길한 상상을 했다. 둘 중 누군가 나를 죽여준다면 좋을 텐데, 라고. 그때였다. 현관 차임벨이 울렸다. _36p 온몸의 피가 수런수런 들끓기 시작했다. 조금 전 소노코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와는 질이 다른 감정의 동요가 그의 몸을 서서히 지배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정신은 이상할 만큼 냉정했다. 우뚝 선 채로 야스마사는 이제부터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냉철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는 지극히 짧은 순간에 수많은 것을 상정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결단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_49~50p 타살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야스마사는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밝혀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내 손으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이건 결코 남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누이의 행복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긴 분함은 범인이 체포되는 정도로는 결코 가라앉힐 수 없었다. 범인을 밝혀낸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도 실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아직 그쪽으로 생각을 굴리고 있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_91p 당신을 믿는다, 라는 그의 말은 단순히 형식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말했듯이 정말로 야스마사의 복수를 저지할 마음이라면 현 시점에서도 얼마든지 손을 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건 분명 야스마사의 이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라고 야스마사는 생각했다. 그 형사는 아직 젊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좀 더 추하고 비겁하고, 그리고 약하다. _265p 야스마사는 손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개의 스위치는 손바닥에서 흐른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야스마사는 다시 한 번 두 개의 스위치를 얼굴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츠쿠다 준이치와 유바 가요코의 충혈된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윽고 그는 한쪽 스위치를 던져버렸다. 남은 것은 범인의 몸에 연결된 스위치였다. “이즈미 씨!” 가가가 외쳤다. 야스마사는 가가를 빤히 쳐다보고 그러고는 범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스위치에 손가락을 얹었다. _3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