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나카무라 신이치로中村眞一郞 소설가이며 시인이자 평론가. 1918년 도쿄東京 출생으로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다. 1942년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와 새로운 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문학 그룹 <마티네 포에티끄>를 결성하였고, 가토 슈이치, 후쿠나가 다케히코福永武彦와 공동 집필한 『1946 문학적 고찰』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당시의 일본 현실에 거부감을 표명하면서 프랑스 문학, 특히 지드나 프루스트의 이야기 방식을 자신의 문학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편소설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로 전후파 작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의 프랑스, 영국 작가의 소설에 나타난 시공간의 기법을 일본에 계몽적으로 소개하였다. 이것으로 단편 중심의 사私소설 이래 문학 본래의 형태를 상실한 일본문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97년 여든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표작으로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 『사계四季』『여름』(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가을』『겨울』 등이 있으며, 『겐지이야기源氏物語의 세계』 고전문학론 『일본 고전에 나타난 성性과 사랑』 등이 있다. ■ 옮긴이 유숙자 계명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연구과정을 수학했다(일어일문학 전공). 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비교문학 전공)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와 서울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 옮긴 책으로 『만년晩年』『전원의 우울』『행인行人』『설국雪國』『사양斜陽』『나』 등이 있다.
■ 책 소개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나카무라 신이치로의 국내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신간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는 일흔 살이 된 어느 화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고뇌, 사랑, 에로티시즘을 나카무라 신이치로만의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낸 그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화가로서의 본능과 맞물려 있는 육체적 본능, 예술가와 예술,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까지,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에서 나카무라 신이치로는 그의 미술과 문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보여주며, 일흔 살이 되어 여전히 창조력을 지닌 예술가에게 작업의 원동력인 생명과 여기에 불길을 가하는 ‘사랑'과 ‘성욕', 또한 시시각각 육체를 침범하는 ‘늙음'과 ‘죽음'이 어떤 내적인 필연성으로 서로 얽혀 있는가,라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나카무라 신이치로는 예술과 삶의 본질, 예술가에게 있어서 본능과도 같은 예술 창작의 욕구를 통해 과연 예술가와 예술, 그리고 삶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는 1988년 6월부터 1989년 4월까지 잡지 <신초新潮 45>에 「나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부제가 달려 연재되었는데, 이것은 일본 문단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동안 장편소설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로 전후파 작가로 알려져 오면서, 나카무라 신이치로는 일본 현대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가라는 평을 받아왔고, 그의 이름 앞에는 어김없이 “순수 문학 작가”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의 ‘옮긴이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나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상업적 의도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그에게는 순수한 포르노그래피를 쓸 의지도 없었다. 다만, 이전에 나카무라 신이치로가 쓴 소설보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에서 포르노적인 정경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신초사 편집부에서 그와 포르노를 의도적으로 연결시켰을 뿐이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소설은 주인공이 일흔 번째 생일을 맞는 것으로, 구체적인 날짜나 시간의 표시 없이 “○월 ○일”로 꿈인 듯 시작된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노년의 화가는 만년의 피카소처럼 최근 본업인 그림보다도 가마터가 있는 산중에서 지내며 도예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아내 나타샤는 젊은 시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에서 활동한 발레리나로 지금은 도쿄에 있는 발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젊었을 때 영화제작까지 할 정도로 왕성한 호기심과 창작 욕구를 지녔던 주인공은 근래 들어 점점 쇠퇴해져 가는 육체와 끊임없이 솟구치는 창작에 대한 열정 사이를 오가며, 지난 시절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준 수많은 여성들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주인공의 첫사랑이자 무대장치가인 노년의 여성, 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이자 모델인 Q, 배꼽이 아름다운 ‘배꼽의 여신', 플루티스트 ‘선연한 미녀', 재즈 보컬리스트 에리 등등. 주인공과 그녀들과의 육체적 관계는 몽환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때로 격렬한 에로티시즘으로 인간 내면의 욕망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많은 문인들과 화가들,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기쿠치 고잔, 에즈라 파운드, 러시아 화가 소니아 들로네, 달리Dal, 탕기Tanguy, 페르멜vermeer, 로뎅, 까미유 끌로델 등의 생애를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작품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또한 그들의 작품을 마주하면 할수록 화가로서의 본능이 솟구쳐 올라 주인공은 여성들의 육체를 탐닉하게 되고, 이 쾌락의 절정에서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융합되는 듯한 느낌을 맛보게 된다. 즉 그림을 그리듯 캔버스 안에 하나의 구도로 포착되어진 그녀들과의 아름다운 유희는 유화, 판화, 도예, 영화제작, 시詩 등 모든 예술 분야를 섭렵한 지적이고 호기심 왕성한 주인공의 예술 창작의 에너지이자, 원동력인 것이다.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는 일흔 살 예술가가 겪는 좌절과 자기 부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나카무라 신이치로만의 깊이 있는 시선과 일본 특유의 정서로 예술과 삶, 인간 본능의 아름다움을 에로티시즘으로 치환시켜 보여주고 있다. ■ 본문 중에서 나는 그녀에게 “연애라도 좀 하지 그래?”라고 권유했다. 그러자 그녀는 테이블을 뜨며 홀쭉하고 밋밋한 몸을 뻗어 “당신하곤 달라요” 하고 내 말을 가볍게 맞받아쳤다. (중략) 그녀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선율은 놀랍도록 감미롭고 화려하게 혹은 비통하게 화면에서 넘쳐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휘자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나의 놀라움을 표명했다. 그러자 그는 “그걸 몰랐나? 그녀는 지금 대단한 열애 중이라네” 라고 하며, 그녀의 상대는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음악대학에 새로 들어온 작곡가 아무개 씨라며 상대의 이름까지 덧붙여 말해주었다. 나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 본문 11p 한때 예술적으로 혼란기에 빠져 있을 때쯤 내 안에 새로운 미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소년만을 접대인으로 고용한, 어떤 특수 욕탕을 몇 차례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중략) 소년들은 예외 없이 “날 사랑하지 않아?” 하고 어리광 부리는 말투로, 그러나 직업적인 습관에 의한, 속이 뻔한 질문을 던졌고 마침내 나는 나의 욕망을 목구멍 깊숙이 방출시키는 걸로 늘 끝내곤 했다. 나는 결국 내가 고대 그리스인이나 일본 센고쿠戰國시대 무사와 같은 성적 취향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런 방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 본문 80p 나는 피카소의 목이 두 개인 여자 같은 시간을 담은 초상을 싫어했고, 에른스트의 고대 중국의 청동방패 같은 시간을 초월한 고요를 사랑했다. 이런 나의 경향에 대해 ‘고전주의'라 이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년에 영화로 시도한 것도 사실은 인물의 마음과 육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장르 속에 영원의 순간을 도입하려는 실험이었다고 새삼 수긍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당시에 강한 인상을 받은 영화는 모두 콕토의 것으로 〈미녀와 야수〉도 〈영겁회귀〉도 나와 똑같은 주제를 추구한 것이다. - 본문 205p 나는 서둘러 끌로델의 두툼한 도록을 넘기기 시작했다. …… 특히 〈성숙〉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노파의 모습을 취한, 죽음의 신에게 끌려가는 중년 남자를 향해 처녀가 무릎을 꿇은 채 덧없이 두 팔을 기도하듯 내뻗고 있는 것이었는데,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젊은 처녀의 애원하는 표정은 필사적인 순간을 영원히 얼어붙게 만드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만 이 작품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내가 반세기에 걸쳐 추구해온 미는 좀더 절제된, 소위 고전적인 차분함을 지닌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브론즈 덩어리는 인간 영혼의 비극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노출시켜, 그렇다고 결코 천박하지 않은 극도의 세련된 기교로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미추를 초월한 것이다. 이처럼 온몸을 던진 탄식의 표현에 성공한 적이 내게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 본문 74p 『아름다운 신과의 유희』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여러 예술 장르를 편력하듯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영혼의 평화를 원하는 지속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쾌락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충격적인 정사, 우아한 음악을 닮은 소중한 축제, 호기심의 희생이 된 기이한 사고事故, 마음의 의지가 되는 친밀한 우정”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작가 나카무라 신이치로는 비슷한 주제로 일본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배 작가'들의 대표작을 들어가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 탐미주의의 대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의 『미친 노인의 일기』는 “생활과 애욕의 균형이 흐트러진” 작품이라 말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생활이 없고, 있는 건 정욕뿐이며, 이것을 작가는 극도의 세련된 문체로 치밀하게 묘사했고, 이만큼 고도의 예술적인 ‘포르노'는 세계문학사상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 나카무라는 독자에게 주문합니다. 가능하면 자신의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 자신의 성의식 또는 성경험의 내용과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그 의미에 대해, 잠시나마 지적인 회상을 해보기를. - ‘옮긴이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