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회
“노동자의 반지는 손가락에 난 상처다” “가난한 집에는 할머니들 구리반지 냄새가 난다” 등의 내가 썼던 반지에 대한 문장 몇 개를 추려보는데,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문산에 살 때다. 출판사에 들러 일을 마치고 다시 경의선 열차를 타려고 전철을 탔었다. 전철 안은 붐볐다. 시청역을 막 지났을 때였다. 발끝을 뭐가 톡, 건드리는 것 같았다. 힘들게 고개 숙이고 전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고급스러운 반지 상자가 있었다. 주인이 누굴까. 주위를 살피며 경계심이 들었다. 어려서 들은 소매치기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금 소매치기 작업이 진행 중은 아닐까. 소매치기들이 실수로 반지를 놓친 것은 아닐까. 빠르게 생각이 오갔다. 똑바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볼 수가 없었다. 쇼핑백을 든 연인이 내 옆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반지 안 사셨나요. 네! 연인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발밑을 가리켰다. 전철이 막 서울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젊은 연인은 고맙다고, 고맙다고 반복해 인사를 했고 나는 인파에 떠밀려 전철에서 내렸다. 막차를 타고 문산으로 돌아가며 나는 반지처럼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보았었다.
내가 최근 기억에 남을 만한 반지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무공예 하는 동생한테서다. 술 먹는 자리였다. 메밀꽃 필 무렵에 독사 대가리에 독이 가장 가득 찬다는 얘기에서 시작된 술자리 얘기는 정처 없이 흘러 인분 이야기에 도착해 있었다. 누군가 여자들 화장실 냄새가 더 독하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받아 남자들만 사용 하는 화장실 냄새도 남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냄새보단 독하다는 얘기와 그 이유는 음양조화에 있다는 어느 책에선가 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다들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무공예 하는 동생이 술을 한 잔 들이켜더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잘 아는 형님이 한 분 계셔요. 그 형님이 뭔 일을 하느냐 하면, 환경사업을 해요. 쉽게 말해 똥차를 끌어요. 그 형님한테 들은 얘기 하나 내가 해볼게요. 수거한 분뇨를 다 버리고 나면 바닥에 찌꺼기가 남는대요. 그 찌꺼기를 버릴 때 나무 작대기로 헤쳐본대요. 그러면 거기서 오만 잡동사니들이 다 나온대요. 그 형님이 그 일을 하던 어느 날 반지 하나를 주웠대요. 마침 부인 생일이고 선물 살 돈도 없고 반지를 사준 적도 없고 해서 반지를 깨끗하게 닦았대요. 반지를 선물했더니 부인이 너무 좋아하더래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생기더래요. 뭐냐 하면, 부인이 쌀 씻을 때 그 반지가 유난히 반짝이더라는 거 있죠. 그래서 밥할 때만이라도 반지를 좀 빼고 할 수 없냐고 부탁하니까 부인 왈, 당신이 사준 반지 죽을 때까지 빼지 않겠다고 하더래요. 밥맛 살아나는 거죠, 뭐. 거기다가 선물을 하고 나서 부부 사이가 더 좋아져서 부인이 잠잘 때 반지 낀 손으로 남자의 중요 부위를 덥석 잡고 잔대잖아요. 그 형님, 반지 때문에 환장하겠다고 하던걸요. 빨리 돈 벌어 새 반지를 사주어야 겠다고 하면서요.”
나를 마음에 반지처럼 끼고 평생 살았을, 몸이 많이 아픈 어머니에게 은 쌍가락지를 끼워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반지 상자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