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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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

이삿짐을 실은 트럭 두 대와 승합차가 산골 마을로 접어들었다.

바닷가 마을에 살며 만나던 풍경과 이질적이어서 그런지 산이 유난히 높고 계곡이 협소해 보였다. 띄엄띄엄 마을이 나타났고 고갯마루를 지나며 내려다본 계곡의 물은 푸르렀다.

과연, 멀기는 멀군.”

승합차에 타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글쎄, 이삿짐 차량 기사에게 돈을 더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

그려, 몇 만 원이라도 더 지불하자고.”

이렇게 깊은 산골인지는 정말 몰랐어요. 괜히 쓸쓸해지네요.”

차는 몇 굽이 고개를 더 넘어 좁은 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큰물이 났었던지 군데군데 포장길이 유실되어 있었다. 임시로 급히 개통한 흔적이 남아 있는 길에서 차가 심하게 흔들렸고 일행은 이삿짐 차가 괜찮은가 차창을 살폈다.

 

“H 형이 이사를 간대.”

H 형은 동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그의 집에 모여 마을 일에 대해 논의도 많이 했었기에 청년들은 그가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섭섭해했다. 섭섭한 마음을 어떻게 달랠까 생각하다가 이삿짐 차 한 대 부르자는 제의가 나왔고 쉽게 합의를 봤다.

H 형은 부지런했다. 그는 동네 비어 있던 큰 집을 빌려 이사 왔다. 이곳저곳에서 모아 온 자재로 초가집 방갈로를 짓고 민박을 쳤다. 민박 온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며 사슴, 흙돼지, 칠면 조, 오골계, 토끼, 러시아산 기러기 등을 길렀다.

또 손님들에게 무공해 채소를 서비스로 준다며 텃밭에 농사를 지었다. 길을 가다가 멈춰 그의 집을 볼 때면 그는 늘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거나 가축들 먹이를 주고 있었다.

새벽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어느 날이었다. 낚싯대를 메고 지나가다 보니 주위가 어두컴컴해 잘 보이지 않는데 그는 벌써 밭에 엎드려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참 열심인 사람이었다. 그는 술도 잘 먹었다. 막걸리를 통으로 시켜놓고 먹었는데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도 영락없이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독일제 위장을 가졌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의 말은 직선적이었으나 항상 정이 담겨 있어 그의 집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집에 놀러 가면 그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고추밭에서 걸어 나오며 막걸리나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농사꾼이었다. 농사를 크게 짓는 친구들보다 그가 더 농사꾼 같아 보일 때가 많았다.

그가 소리치면 형수는 마당에 있는 나무의자로 막걸리와 김치, 고추 등의 안주를 내왔다. 형수는 순하고 맘이 착해 술 먹는다고 그에게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형수는 술을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손님들이 시키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었다. 동네 일이 있는 날은 그의 집에 있는 장고, 꽹과리, 북을 치며 한판 걸지게 놀기도 했다. 형수는 <사랑가> <상주모심기> <진도 아리랑>, 판소리 대목 중에 <쑥대머리> 등등 못 부르는 노래가 없었다.

그렇게 어울려 살던 중 이웃 동네에 대형 민박, 펜션들이 생기자 그의 생활은 어려워졌다. 그는 새로운 돌파구로 텃밭에 소장을 짓고 소를 길렀다. 그런데 소장에 불이 나 낭패를 보게 되었고 결국 이사를 가게 되었다.

 

차들이 멈춘 곳은 외딴집이 언덕 위로 올려다 보이는 길가였다. 마당까지 큰 이삿짐 차가 올라갈 수 없었다. 작은 트럭으로 이삿짐을 실어 나르기로 하고 이삿짐 차에서 짐들을 풀어 길가에 내렸다. 농사지으려면 다 필요한 것들이라고 챙겨 실어 짐이 생각보다 많았다.

짐을 내려놓고 갈 길이 먼 큰 이삿짐 차를 보내기로 했다. 청년회장이 이삿짐 차 기사에게 계약한 액수보다 돈을 더 얹어주려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웃돈을 사양하며 말을 이었다. 자기도 처음에는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어떻게 돈을 더 달라고 말할까 고민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산골로 깊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그 생각이 가시더라고 했다. 이렇게 산속까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살러 오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보니 맘이 짠해지기까지 하더라고 했다. 어떻게든 살 아보려는 사람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야박하게 거리나 따지며 운임 얘기를 꺼내려고 한 자기가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자기도 어렵게 살지만 턱없이 야박한 사람은 아니라는 기사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돈을 거절하는 기사에게 청년회장은 밥값이나 하라고 하며 돈 몇만 원을 찔러주었다.

 

이사 간 마을의 반장이 올라와 짐 나르기를 도왔다. 마을 반장은 그 멀리서 이사를 오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온 걸 보면, 이사 오는 분이 인심은 안 잃고 살았던 것 같다고 하며 열심히 짐을 날랐다. 이삿짐을 다 나르고 이사 온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형이 잘 아는 집에 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이삿짐 속에 싣고 온 막걸리도 한 잔씩 마셨다. 이제 막걸리를 누구하고 먹냐며 쓸쓸한 이별을 할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산골에 그의 식구들을 내려놓고 빠져나오며 우리는 맘이 착잡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제안을 했다. 이왕 이렇게 늦은 거 동해로 빠져나가 오징어회에 소주나 한잔 먹고 가자고 했다. 불영계곡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비껴 지나가는 차량은 몇 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술을 먹으며 그와 있었던 각자의 추억을 말하며 웃기도 했지만 내심 맘이 무거웠다.

 

그해 늦가을. 그 형이 동네 사람들에게 택배를 부쳐왔다. 정성 들여 포장한 박스 안에는 단호박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밭이 비탈져 기계가 못 올라가 부부가 인쟁기를 끌며 농사짓고 있더라고 했었는데……. 호박 한 통을 책상에 올려놓고 한겨울을 같이 나며 나는 생각했다.

이 호박은 그 형의 땀방울이 호박이 되어 우리 마을 청년들 가슴속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마음이 마음속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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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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