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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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

달을 보면 바둑이 생각난다. 두 고수가 하늘에서 대국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한 고수가 태양을 착점하였다. 이에 다른 고수가 응수하려고 달을 착점하다가 멈칫거린다. 태양의 수가 워낙 세다. 달을 두고 있는 고수는 착점하지 못한다. 천천히 돌을 놓았다가 천천히 돌 거둬들이기를 반복할 뿐이다. 돌을 거의 놓자고 결심하는 단계까지 손가락 끝을 돌에서 빼, 보름이 되었다가 다시 천천히 바둑돌을 손가락 끝으로 덮어가, 그믐이 된다. 태양은 늘 쨍쨍 자신만만하고 달은 늘 생각에 잠겨 있다. 그래서인지 달을 보는 자도 늘 생각에 젖는다. 달이 기억 하나를 풀어 던진다.

 

겨울, 달 밝은 밤이었다.

도심盜心이 싹튼 소년 셋이 모였다. 그 소년 중에 겁 많은 유년의 내가 끼어 있다.

겁나?”

, 겁나.”

, 겁 안 나.”

나도 겁 안 나.”

그럼 이 대 일이니까 굴렁쇠를 훔치러 가자.

소년 셋이 정육점 집과 막걸리 양조장 사이에 난, 이름이 지저분한 똥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면을 통틀어 열 대도 안 되는, 티브이 소리가 막걸리 양조장 담장을 넘어오고 있었다. 양조장 뒤뜰은 정화조가 있어 넓었고, 건물에 ㄷ자로 맞물려 있는 담장은 길었다. 소년 셋 중 하나가 담장을 넘었다. 흙돌담에 얹혀 있던 용마름이 비틀어지며 바스락, 지푸라기 소리를 냈다. 담을 넘은 소년이 굴렁쇠를 담장에 기대 간신히 밀어 올렸고 담장 밖 소년 하나가 굴렁쇠를 받아 수평으로 눕힌 다음 끌어내렸다. 소년 하나가 담장을 넘어 나오고. 속닥속닥, 속닥속닥, 속닥속닥.

 

겁 많은 내가 망을 보며 앞서 걸었다.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입천장에 혀를 힘껏 붙였다가 떼며 , 소리를 내기로 하고, 주위를 살피며 허옇게 눈 쌓인 밭을 가로질렀다. 발아래서 솔은 눈 부서지는 소리가 뽀드득뽀드득 났다. 입천장과 혀를 이용해 내는 소리는 또래 중 내가 제일 컸다. 그래서 음치인 내가 합창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시계는 아침부터까지 부르면, ‘똑딱 똑딱’, 혓소리로 노래를 이었었다.

소년 둘은 굴렁쇠를 옆으로 눕혀 옆 걸음으로 들고 오다가, 잠시 쉬고 나서 세워 들고 둘 다 앞을 보고 걸었다. 대보름달도 빠져나갈 것 같은 둥그런 원 하나가 외딴 무허가 치과 집을 지났다. 작은 돌로 쌓은 밭둑에 서 있던 달맞이 대궁들이 부러졌다. 봄이 오면 살 통통 오른 메 뿌리 캐 먹으려고 들추어내던 돌들이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소를 잡지 않아 오랫동안 비어 있는 도시장간(도축장) 옆에서 행렬이 멈췄다. 큰 둑을 올랐다. 개울 건너 엿장수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둑을 내려서 얼음 언 개울을 건너고 다시 둑을 오르고 깨밭을 지났다. 깨 대궁을 베어내고 남은 깨 끄덩이가 발에 밟혀 부러졌다. 엿장수 집 개가 짖었다.

너희들이 밤에 어쩐 일이냐?”

…… 거요.”

리어카에 기대놓은 굴렁쇠를 가리켰다.

있던 데 갖다가 놔. 이렇게 큰 굴렁쇠가 나올 곳은 한 곳뿐이잖아. 양조장 나무통 굴렁쇠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원위치 시켜놔, 빨리 가져가서. 못써.”

 

굴렁쇠를 못 팔아, 돈을 못 벌어, 티브이 있는 친구 집에 과자를 못 사가, 웃으면 복이 와요어사를 못 보게 되었어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소년들이 굴렁쇠를 멨다. 다시 개울을 건너고 도시장간을 지나고 야매 치과 집을 지났다. 밭을 가로지르다가 소년 하나가 넘어졌다. 굴렁쇠가 틀래틀래 몇 바퀴 돌다가 쓰러졌다. 달려간 소년들이 눈에 숨어버린 굴렁쇠를 찾아내며 키득키득 죄를 털어내듯 웃음을 털어냈다.

소년들은 티브이가 있는 친구 집에 밤마실을 다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왠지 미안하여 과자를 사 갔다. 담배 밭고랑에서 비닐을 벗겨 개울물에 빨아 갱변 돌 위에 말려 팔기도 하고 집과 동네의 고물을 주워 나르기도 했다. 또 예비군 사격 훈련장이 있는 산에 올라 흙에 박힌 탄두를 캐기도 했다.

과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티브이가 있는 집 친구를 부를 때 소년들은 행복했다.

 

굴렁쇠를 눕히고 둥근 원 안에 둘이 들어가,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손 벌려 잡고 둘 다 앞을 보며 걸었다. 무엇이 옳다고 하늘에는 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고 소년들도 동그라미를 들고 걸었다. 무사히 굴렁쇠를 담장 안으로 넘겨놓았다. 소년 셋이 정육점 집과 막걸리 양조장 사이에 나 있는 똥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잘못 굴러갈 수도 있었던 소년들의 죄업을 끊어준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맑게 들릴 듯도 한 달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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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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