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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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전화를 걸어오는 동생이 한 명 있다.

잘 지내셨어요?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저는…… 그냥 잘 지내고 있네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남의 말 하듯 잘 지내고 있네요, 라니. 그의 독특한 말투를 듣고 있으면 그가 환한 얼굴로 금방 다가선다.

 

형님 주례 좀 서주세요.”

지금 농담하냐. 난 아직 장가도 못 간 놈인데. 남들이 몰상식하다고 흉봐.”

그가 재미 삼아 나를 떠보는 말이라면 중도에 끊고 화제를 딴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가 너무 진지했다. 신부 될 사람과는 벌써 말을 끝냈고, 장인 될 분의 허락도 받았다고 했다.

내가 미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허락해주셨냐?”

사고가 워낙 열려 있으셔서요. 당부로, 잠바 입지 말고 양복은 꼭 입었으면 하시네요. 당신은 괜찮은데 하객들 땜에……. 주례는 신랑이 구하는 거라는데 주위에 마땅한 사람도 없고 그러네요.”

 

동생이 옷값을 준다는 걸 살림에 보태 쓰라며 간신히 사양할 수 있었다. 백화점에 가 거금 사십만 원을 지불하고 양복 한 벌을 샀다. 양복을 산 건 난생처음이었다.

양복을 차려입고 대구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이십 대에, 김훈 선생은 삼십 대에 주례를 봤다지만…… 내 주제에 과분하게도 사십에 주례를 보러 가는 길.

나는 안 떨고 있는데 열차가 떨고 있나, 이거 손이 왜 이러지. 중얼거리며 열차를 살펴보았다. 분명, 내가 타고 있는 열차는 덜컹거리지 않기가 주특기 중 하나인 고속열차였다. 손 떨림을 인정하고 요약해온 주례사를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 선생이 후배 시인 주례를 보는데 원고지 넘기는 모습이 폼 나 보여 한번 표절해볼 요량이었다. 아 그때, ‘신랑은 몸이 마른 편이나 어깨가 벌어졌고 종아리가 튼실했다. 신부는 그 곁에서 자주 웃었다. ……서로 불쌍히 어여삐 여겨 살아라. 연민의 정으로 살아라라는 요지의 주례사는 어느 주례사보다 압권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주례사인데…….

 

예식장에 두 시간 전에 도착해 결혼식 두 건을 보았다. 식순과 주례자의 시선 처리를 공부할 목적이었다. 예식 시간이 다가오고 신랑을 만났다. 축하한다는 말보다 넥타이 맬 줄 아느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신랑이 고개를 저었다. 주머니에 챙겨온 넥타이를 꺼내 들고 사회 볼 친구를 찾았다. 그도 고개를 저었다. 신부 대기실로 갔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천우신조. 신부 도우미가 고등학교 때 교복에 매보긴 했다며 손가락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도우미, 정말 고마운 도우미.

시간이 임박하여 사회자에게 경험이 좀 있냐고 물어보았다. 처음이라고 했다. 신랑이 자기도 처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럼 우리 셋 다 처음인데 떨지 말자고파이팅!’을 제안했다.

 

음악이 흐르고 비눗방울이 날리고 나는 꿈처럼 식장에 서 있었다.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 측방에는 서보았으나 하객들 전방에는 초출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단전에 힘을 꽉 줘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견디어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는 순간, 장갑 낀 손가락이 원고지에서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지지 않는 원고지. 장갑을 벗으면 결례일 것 같고, 이를 어찌 할 거나. 마음은 십여 초 동안 장갑을 벗자, 벗어서는 안 된다, 이 둘 사이를 백팔 번 오갔다.

 

새신랑 연락 왔나. 연락이 안 되네. 이 사람아, 총각이 주례를 봐서 잘못된 것 아냐.”

동네 형님 말은 걱정 반 농담 반이었으나 내 맘은 그렇지 못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그가 신혼여행을 떠난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었다.

며칠 후.

형님, 연락 왔어요. 총각이 주례 봐서 살아온 것 같아요.”

자네 주례사는 어떻게 했나?”

우리가 두 손으로 밥상을 받쳐 들 때 삶에 의지가 돋고 마음이 경건해지고 착해지잖아요. 그래서 밥상을 들 때의 맘으로 평생을 살라고 했죠.”

 

동생은 어설픈 주례자의 떨림을 잊지 않았던지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전화를 한다.

내가 고마워할 사람들은 수두룩한 반면, 나를 고마워할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온 실패의 날들. 반성이 절로 깊어지기도 하고 사회가 반성하자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한 해의 끝. 동생의 전화는 내 마음을 울린다.

 

 

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두 사람에게

 

한 아름에 들 수 없어 둘이 같이 들어야 하는 긴 상이 있다

오늘 팔을 뻗어 상을 같이 들어야 할 두 사람이 여기 있다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상 위에는 상큼하고 푸른 봄나물만 놓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뜨거운 찌개 매운 음식 무거운 그릇도 올려질 것이다

 

또 상을 들고 가다가 보면 좁은 문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할 때 등지고 걷는 사람은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을 믿고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은 등지고 걷는 사람의 눈이 되어주며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한 사람이 허리를 숙이면 한 사람도 허리를 낮추어주고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면 한 사람도 걸음을 멈춰주고

한 사람이 걸음을 독촉하면 한 사람도 걸음을 빨리 옮기며

조심조심 씩씩하게 그대들이 걸어간다면

 

좁은 문쯤이야!

좁은 문쯤이야!

 

오늘부터 같이 상을 들고 가야 하는 그대들이여

팔 힘이 아닌 마음으로 상을 같이 들고 간다면

어딘들, 무엇인들, 못 가겠는가, 못 들겠는가

오늘 여기 마음을 맞잡고 가야 할 두 사람이 있다

 

 

나는 위 주례사를 요약하여 후에 부부라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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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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