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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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그해 여름 친구 박과 나는 글공부를 하며 직장에 다니던 친구 채와 조의 집에 갔다. 친구 채와 조는 같은 직장에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양옥집 이 층에 살고 있었는데 옥상 빈터에 널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친구들이 낮에 평상에서 책 읽으며 쉬라고 우리들을 위해 그늘막을 쳐주었다. 소설 공부를 하는 친구 박은 귄터 그라스의 넙치를 읽으며 감탄했고 그 곁에서 나는 시를 끼적이며 낮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우리들은 방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평상에 나앉아 듣다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밤이 깊어 별을 보고 누울 시간이면 친구들이 우리들이 낮에 무엇을 했나 점검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가 아침 일찍 술을 먹고 퇴근 시간 즈음이면 깨어 있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우리가 낮에 읽은 책과 쓴 글을 이야기해주면 친구들은 좋아했고 그런 다음 날은 용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생판 논 날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출근해버렸다.

우리가 몰래 낮술을 먹고 며칠을 논 어느 날이었다. 친구 박이 데모를 하자고 했다. 해서 우리는 그릇이란 그릇을 죄다 엎어놓고 부엌데기 투쟁 선언문이란 문건을 작성하고 집을 비웠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한 파리라고 파리 몇 마리를 잡아 선언문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들의 데모는 먹혀들었다. 친구들이 삼겹살과 술을 사 왔다. 친구 박과 나는 신나서 술을 먹었다. 다음 날, 일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은 친구를 위해 박이 도마 소리를 내며 음식을 준비했다. 취기 덜 가신 친구들을 평상으로 불러냈다. 오이냉국과 국수사리를 내왔다. 역시 오이냉국은 조선 오이에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야 한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국수를 말아 먹으며 논다랑이 하나 건너에 나 있는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이 그곳 면의 장날이라 장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인들을 태운 경운기들이 연신 지나갔고 걸어서 장에 가는 노인들도 있었다. 경운기 한 대가 섰다. 경운기를 세운 노인이 걸어가고 있던 노인에게 타라고 손짓을 건네자 걷고 있던 노인이 길을 가로질렀다. 그 순간 차 한 대가 노인을 들이받았다. 노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우리들은 어, 어 소리를 내며 오이냉국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친구 박은 친척집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는 며칠 더 시를 써 문단에 등단을 했다.

친구 박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여름 친구 박이 만들어 줬던 오이냉국은 기억에 남아 있건만 친구 박은 없다. 친구 박의 오이채 써는 서투른 도마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여름밤이면, 먼 별에도 찝찌름하게 간이 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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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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