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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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아무래도 대형 서점보다는 집 근처 가까운 동네 책방을 이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대형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북적거림과 광활함을 좋아할 때도 있지만 동네 책방만의 고요함과 앤틱한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이곳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이미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내가 자주 가는 책방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사라진다면 정말 공허할 것 같다. 언젠가 한번은 동네 책방에 갔을 때 사장님께서 먼저 말을 건 적이 있다. 내가 오늘 처음으로 온 손님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를 씁쓸함과 동시에 책방에 들르는 사람은 정말 작가 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독서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집 근처에는 동네 책방이 없다. 집에서 30분 가량 이동해야만 동네 책방을 만날 수 있다. 대신 20분 정도 걸어가면 대형 서점이 나온다. 그래서 아주 가끔 그곳에 들르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로 문학잡지나 시집 코너가 있는 곳으로 바로 가는데, 사실 서점 안에서도 그곳이 가장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별 다른 일 없이 시집 코너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시집 코너로 와 한참동안 여러 개의 시집을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시집을 신중하게 찾고 있었던 것 같다. 하고 많은 책 중에 시집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니. 혹시나 마음 편히 시집을 보지 못할까 싶어서 나는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다른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저 학생이 어떤 시집을 고를지 궁금했다. 키링이 많이 달린 가방을 바닥 한쪽에 내려놓고 학생은 한 시집을 꽤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느낌이 핀 시리즈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학생이 들고 있던 시집은 나의 두 번째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진짜 내 시집을 읽고 있는 독자라니. 내 시집을 읽는 독자가 존재하긴 하는구나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학생이 어떤 시집을 고를까 하는 생각에서 나의 시집을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물론 가서 물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학생의 귀한 독서 시간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시집을 다시 책장에 넣어놓고 자리를 떴다. 나는 그제야 내 시집이 있는 코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시집을 꺼내서 펼쳐 보았다. 분명 내가 쓴 시들이지만 낯설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실 아쉽지는 않았다. 내 시를 한편이라도 읽어주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내 시를 읽어준 독자를 이곳에서 만난 게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어 꿈인가 싶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자신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시를 너무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시에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주위 친구들이나 동료들 그리고 독자들을 더 믿기도 한다. 한번은 속상한 일이 있어 친구에게 자신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단번에 무슨 말이냐며 너의 시를 좋아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자꾸 뒤로 가게 되면 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서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내가 자꾸 다른 것 때문에 시를 못 쓰게 된다면 내 시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얼마나 속상하고 힘이 빠지겠는가. 사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누가 내 시를, 시집을 계속 궁금해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 있다.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나는 집 근처 대형 서점에서 내 시집을 읽고 있는 한 독자를 만났다. 두 번째 시집에는 약 20편 정도의 시가 실려 있다. 독자가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었으므로 아마 20편 중에 6편 정도는 제대로 읽지 않았을까 싶다. 나머지가 자기 취향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귀한 시간을 내서 내 시집을 읽어준 것에 그저 감사했다. 독자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써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시를 보고 좋아해주고 계속 기다려주는 독자분들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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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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