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치과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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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회

치아가 아플 땐 걱정부터 든다. 현재 재정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떠올려본다. 어렸을 땐 치아가 아플까봐 치과에 가는 게 무서웠는데, 지금은 돈이 얼마나 나갈까 계산하다가 순간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럴 때 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다. 종종 치료를 받다 서럽게 우는 아이들을 마주하는데, 사실 나도 울고 싶다. 하지만 어른은 혼자 치과에 가서 울지 않고 잘 타협해서 치료를 잘 받고 오는 것이다. 아무튼 치과는 조금이라도 아플 때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눈물이 날 수도……. 더 큰 것들이 연쇄 작용처럼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며칠 전 집 근처에 자주 가던 치과가 하필 휴무라 다른 곳을 찾아봐야 했다. 다음 날 갈 수도 있었지만, 뭐랄까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영영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미리 제공되어 있던 리뷰가 괜찮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많이 가는 것 같아 새로운 치과에서 점검을 받아보기로 했다. 비교적 큰 병원만 가다가 동네 병원에 오니 분위기가 남달랐다. 의사 선생님 한 분,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운영하는 치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무한대다. 한 사람이 끝나면 한 사람이 들어가는 방식이라 앞 순서가 무조건 끝나야 들어가서 뭐라도 받을 수 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한 할머니분께서는 TV에 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혼잣말을 하셨다. 뒤이어 한 아저씨분께서는 그 말에 받아치기라도 하듯 어떤 정당을 뽑아야 한다고 하다가 이내 목소리를 줄이셨다. 모두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혼잣말이 아닌 것 같았다. 치과에서 갑자기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진료실뿐만 아니라 대기실에서도 치열한 사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대기실로 오자 토론은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곧이어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나는 약 50분 만에 진료실에 들어가 누울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세상 거친 스케일링을 처음 받아보았다. 거짓말 안 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가까스로 참았다. 눈물을 참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니라 노래 때문이었다. 보통 병원에 가면 클래식이나 잔잔한 뉴에이지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이상하게 80-90년대 팝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치과 기계음 사이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선생님의 거친 손과는 다르게 아주 부드러운 허밍이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료를 받는 도중에 선생님은 어김없이 아프면 손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사실 이럴 때 나는 한 번도 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지금 손을 들면 유난 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게 소용없다는 걸 알아서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한의원이나 정형외과에서 아프면 벨을 눌러달라고 한다든가, 치과에서 손을 들라고 한다든가. 웬만해선 그냥 넘어가게 된다. 뭐 이런 것까지 참나 싶지만 참는 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이런 것까지 참게 된다. 아무튼 그 치과에서 가장 신기했던 건 선생님의 허밍을 따라가다 보니 치료가 다 끝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다 고도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 끝나고 나서 간호사 선생님은 내 이름을 다시 한번 크게 불렀고, 어느 곳을 어떻게 진료 받을지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혹은 상담을 받을 때마다 왜 이렇게 병원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하고 민망할까 싶다. 종종 병원에선 접수 순서대로 TV 화면에 이름을 띄워놓기도 한다. <대기 환자 2진료실 예정>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름과 거리가 확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정신이 없는 상태로 상담실에 앉아 내 이름과 치료받아야 할 항목이 동시에 써진 차트를 본다. 사실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섯 개를 치료받으면 좋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나 많이 치료받아야 한다니 싶었지만 우선 조금 더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린다고 했다. 아직 그 치과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가보다. 집에 와서 스케일링으로 말끔해진 치아를 거울로 확인해보았다. 여섯 개를 치료받아야 한다니 아니 여섯 번이나 무서움을 견뎌야 한다니 머리가 아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치과에 다녀왔는데 왜 이렇게 기가 빨리는지 모르겠다. 몸이 한껏 무거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남은 시간엔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다음 날을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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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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