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불안할지라도 단단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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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곰곰이 생각해보면 20대의 나는 늘 불안과 싸웠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해도 불안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불안하고, 누군가를 만나도 불안하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불안했다. 흔히 말해 정상성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해서 불안했겠지만……. 내게 첫 번째 정상성의 편입은 사실 서울이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무척 낯설었지만 최대한 빠르게 적응하고 최대한 빠르게 편입했어야 했던 공간이었다. 때문에 서울에서 살고는 있지만 과연 내가 서울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건 언제든 무언가가 잘못되면 고향에 다시 내려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서울살이 10년이 넘은 지금 그 불안이 아직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사그라 들긴 했다. 이제 그 불안은 서울이라는 공간보다 그냥 라는 존재로 옮겨지게 된 것 같다. 시를 쓰면 쓰는 대로 불안하고,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불안한 나. 혼자가 좋으면서도 혼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은 나. 과거를 생각하면 괴롭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나. 이런 내가 모여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정상성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과는 다르게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시를 쓴다는 건 꽤나 불안정하고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도착지 없이 어둡고 좁은 길을 혼자서 계속 걸어야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상담 선생님께 이런 말을 전하자 지금 생각이 많다 못해 넘쳐흐르고 있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 방법을 제시한다고 했다. 우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 크게 외쳐서 생각을 차단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다람쥐나 체리같이 귀엽고 상큼한 단어를 생각으로 정의한 다음 생각을 떼어서 거리를 둔 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생각이라는 물이 쏟아지는 하천에 나만의 단어를 외쳐 댐을 건설하는 것,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 단어는 나의 이름과 연관이 있는 단어였다. 부끄러워 말할 순 없지만 상담 선생님께서 너무 귀엽고 좋은 단어라며 생각이 많을 때 꼭 한번 해보라고 전했다.

 

불안하긴 하지만 꽤나 단단한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가? 돌이켜보면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어떤 순간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불안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공교롭게 비슷한 대목이 있어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너는 가만 보면 물에 있는 새 같아. 아니 오리인가? 물 밖에선 엄청 조용하고 고요해 보이는데 물 안쪽에선 엄청 헤엄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겉으론 봤을 땐 여유로워 보이는데 속은 엄청 노력하고 있는 거야.”

저 나무 왠지 너 같다.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기둥은 그대로 있고 이파리만 흔들리잖아. 그러다가 또 잔잔해지겠지. 강한 사람인 거야.”

너 지금 떨고 있었어? 괜찮아 티가 하나도 안 났어. 사람들은 모를걸? 웃기는 말인데 그러면 된 거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 생각을 떼어서 분리시켜보기 보단 나 자신을 떼어서 분리시켜 보게 된다. 정상성에 대한 편입에서 조금 더 벗어난 나. 불안과 상관없이 시는 써야 한다는 걸 아는 나. 어쩌면 나의 불안이 시를 완성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보내려고 노력하는 나.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생각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 나. 이런 나와는 별개로 문득 문득 올라오는 불안과 아직도 싸우고 있는 나. 아마 불안과는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친구들의 다정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정말로 다정하고 괜찮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무언가는 불안할지라도 단단한 사람. 꽤나 멋진 정의 같아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단단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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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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