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향인의 새해 다짐(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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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

신들 중 누구라도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부디 제 다짐을 들어주시옵소서. 부디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선한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 말인즉슨 남에게 베풀고 살면 자기 자신에게 다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어쩐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 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함의 중요성을 믿는 편이다. 어릴 적 새해가 되면 부모님과 함께 큰 마트에 가서 선물을 고르곤 했었는데 정작 정말 사고 싶은 건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레고였다. 레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싸다. 그 어린 나이에도 비싸서 선뜻 사기 어렵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싼 것도 비싼 것이지만 부모님의 기분을 살피느라 자연스레 선물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 대신 나는 아주 작은 레고를 사거나 다른 선물을 사서 돌아왔다. (사실 이것도 너무 감사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아서 참 착하다고 했다. 투정을 부리는 않는 것이라……. 돌이켜보면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순간은 참 많았던 것 같다. 다만 투정을 부리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았을 뿐. 가끔 가족과 함께 선물을 사러 온 아이를 볼 때면 어릴 적 내 모습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저 아이는 솔직하게 말하기를, 너무 많이 눈치 보지 않기를 바란다. 선하게 사는 것과 그 선함을 우선시해서 눈치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니까…….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도 한 해의 다짐 중 감정에 관한 다짐들은 늘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다짐은 아래와 같다.

 

1. 타인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지 말 것.

2.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 것.

3. 겁먹지 말고 한번 해볼 것.

4. 무언가를 잃어도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 것.

5. 기쁨이 찾아오면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누릴 것.

6.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더라도 이겨낼 힘이 있다는 것을, 용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7. 그리고 행복할 것.

 

이렇게 보니 꽤 비장한 것 같기도 하다. 과연 나는 연초에 한 다짐들을 연말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외부, 내부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나에게 편지를 쓰는 나만의 작은 의례가 있다. ‘행복했니?’로 시작해서 앞으로 더 행복하길 바란다로 끝나는 이 편지는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관해 적고, 내년에는 어땠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주 내용이다. 그해에 있었던 일들은 조금 다르지만 늘 마지막은 덜 고통 받고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로 끝난다. 사실 편지에 써진 모든 문장 앞에는 생략된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생각보다이다. 모든 문장에 생각보다를 붙이게 되면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하는 것은 나의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의 나는 정작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투정 부리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족과 함께했던 그 순간은 생각보다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따뜻한 온기와 큰 마트의 북적거림,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설렘…… 물론 부모님이 생각한 선한 것과 내가 생각한 선한 것이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혼자 산 지 벌써 10년이 된 나는 이제 새해가 되어도 큰 마트에 가서 선물을 고르진 않지만 종종 부모님과 함께하던 그때의 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어린 시절의 나와 그런 어린 시절을 거쳐 현재 어른이 된 나를 위해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그 고민 끝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새 잠옷을 사는 일이다. 몸이 편안하면 마음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최대한 가볍고 부드러운 것으로 심혈을 기울여 고른다. 잠옷은 새해 다짐을 이루기에 앞서 가장 최적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해 다짐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책이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사유하자고 다짐한다. 몇 년 전부터 11일이 되면 서점에 가기 시작했는데 책을 두 권 정도 고르고 집에 오면 왠지 모르게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1월은 정말 이상한 것처럼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중순이다. 생일이 1월 중순이어서 그런지 그날을 기점으로 새 잠옷과 새로 산 책을 읽으며 1일에 했던 다짐들을 다시 되돌아보곤 한다. 그리고 정말 바라는 것들을 덧붙여 본다.

 

올해에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아니 올해에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아니 올해에는 누군가와 더 이상 멀어지지 않기를, 아니 올해에는 혼자 있어도 너무 외롭지 않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함의 중요성을 여전히 믿기를 바랍니다.’ (비록 삼일일수도 있지만 아니 삼 개월은 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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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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