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적막은 못 참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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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

내향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외향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타인과 함께 있을 때 흐르는 적막은 정말로 견디기가 어렵다.

 

적막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기분이 좋은 적막과 도저히 못 참겠는 적막.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자인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몸도 마음도 편안한 경우이고, 후자인 경우에는 처음 보았든 그렇지 않든 몸도 마음도 낯설고 어색한 경우이다. 후자인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말이 막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문장이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정말 입에서 순간적으로 하고 튀어나오게 된다. ‘적막이다. 비상이다. 비상.’ 마치 적막을 없애려고 몸부림을 치는 세포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 내 입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벌써 준비 중인 것이다.

 

며칠 전, 자주 가던 미용실 선생님께서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건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니. 아니 정확히는 새로운 미용실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니. 가기도 전에 적막을 떠올리니 약간 두려웠다. 다행히 새로 찾은 미용실은 1인 미용실로 프라이빗한 곳이었다(우선 다른 손님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고 서로가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면 그때부터 커트는 시작된다. 먼저 말을 건네는 선생님도 있지만 묵묵히 머리만 바라보는 선생님도 있다. 그럴 땐 이 적막을 깨야 하는 것인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이 한 분이지만 선생님에게는 그동안 숱한 고객님들이 있었으리라……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고 조심스럽게 적막을 깨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속으로 조금만 참자…… 다시 생각해보자…… 하다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식사는 하셨는지 물어본다. …… 오후 세 시에 식사 여부를 물어보다니. 누가 밥의 민족 아니랄까봐. 정말 식사를 물어보다니! 선생님은 먹었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서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아도 적막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미용실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일을 할 때도, 주문할 때도,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심지어는 친한 사이에도, 아주 잠깐의 틈 사이에도 적막은 찾아온다. 물론 이 적막을 꼭 깨야 할 필요는 없지만…… 뭐랄까. 가끔은 내가 깨지 않으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적막은 우리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대답하고 더 열심히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사람 앞에서는 갑자기 외향력이 장착되어 정말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고 해야 할까? 사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혹시 상대가 더 불편해할까봐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말을 건네서 오히려 상대가 더 불편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말을 건네면서도 그 짧은 순간 나의 마음은 심히 복잡해진다.

 

물론 이 적막이 때론 좋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어떤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들 숨을 죽일 때, 무언가에 집중하기에 앞서 순간 조용해질 때, 오래 본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을 때다. 이때의 적막은 어색한 사이의 증거가 아니라 편안한 사이의 증거로 바뀐다. 적막의 길이가 조금 길어진다고나 할까? 어쩐지 적막은 망망대해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기분이 좋은 적막이라면 수영과 함께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적막이라면 제발 그 누구라도 튜브를 던져주세요. 떠내려가기 일보 직전입니다하게 되는 것처럼 대화를 기다리게 된다. 언제나 적막과 함께 잘 유영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차례 적막이 지나간 후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는데도 도리어 몸은 왜 무거워졌는지 모르겠다. 미용실에서 주고받았던 대화 때문일까? 집에 와서 거울을 보는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미용실에서는 분명 괜찮았던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보니 왜 그렇지 않을까(몸도 마음도 머리도 말이다). 왜 내가 말한

3센티미터와 선생님이 말한 3센티미터는 항상 다른 것인지 정말 이상할 노릇이다. 적막만 생각하느라 내 머리를 신경 쓰지 못했다. 이런……. 한 친구는 내게 적막을 잘 참아보라고, 그러면 집에 가서 후회를 덜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렇지만 적막은…… 그래 조금만 참아보자. 아니, 사실 내가 잘 참을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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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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