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사람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2 회

어중간은 어조사 어, 가운데 중, 사이 간으로 거의 중간쯤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중간쯤 되는 곳이라……. ()향인의 일기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부분의 삶을 어중간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으며,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지도 딱히 큰 관심을 받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땐 방송부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어 지원하지 못했고 대신 추천받은 교지편집부에 들어갔다. 아쉬운 마음에 대학교 땐 연극 동아리에 지원했으나 자기소개 시간에 사투리를 시켜 (민망해서) 그다음부터 나가지 않았다. 그다음엔 야망이라고 쓰인 포스터를 보고 경영 동아리에 들어갔다. 자기소개 때 사투리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표해야 했기 때문에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료하게만 지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어쩌다가 장기자랑에 나가 춤을 췄고, 2학년 땐 어려서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육부장이 되었으며, 3학년 땐 시를 쓰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므로 문예부 반장이 되었다. 대학교 땐 한 번도 MT에 가본 적이 없었으나 동기들 대부분은 그 MT에서 내가 말이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나는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니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야? 물어보았을 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앞에 야망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어 하는 아주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웃음 욕심 하나는 아주 가득하다.

 

대학교 때 우연히 어떤 모임에 초대를 받았는데(아마 모 대학교의 사교 모임이었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독서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웃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독서는 애매하지 않냐며 그건 취미가 아니라 다 하는 것이 아니냐고 다른 것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속으로 그런가? 하며 독서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면 출판 시장이 이렇게 암울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다음 질문으로 특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특기라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을 말하는 것일 텐데.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보다 영화를 많이 보고, 유명하지 않은 음악을 잘 찾아서 듣는다고 할지라도 독서를 취미로 쳐주지 않는 사람에겐 이 또한 그저 논 것일 뿐. 차마 특기가 될 수 없겠다 싶어 그냥 없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의 취미는 영어 뉴스 보기와 캠핑, 특기는 베이킹, 피아노, 축구 등등. 영어 뉴스야 내가 당장이라도 틀어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캠핑이나 베이킹, 피아노, 축구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애매하지 않은 취미와 특기를 가지려면 시간과 재력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취미와 특기가 없는 어중간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향인과 외향인을 구분하는 질문 중 하나는 주말에 집에서 혼자 쉬는 게 좋나요? 주말에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나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그날 모임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재밌었고 즐거웠다. 그런데 집에서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독서라는 애매한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밝혀져서 기분이 좋지 못했을까? 그런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애매한 취미인 독서는 내 삶에 있어서 한 번도 애매했던 적이 없다. 나는 독서를 통해 가보고 싶었던 나라에 가보았고,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를 경험해보았으며, 여러 종류의 나무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우주의 신비로움이 얼마나 인간과 닮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중간한 삶을 살아왔다고 해서 내 인생이 그렇게 심심했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다. ‘어중간하다는 어쩐지 회의적인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단단해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처음과 끝, 양극단에 서 있어야만 꼭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듯 나는 저 중간쯤 되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향성이 60퍼센트 나왔다고 해서 나머지 40퍼센트의 외향성이 다 지워지는 게 아니듯 말이다. 거의 중간쯤 되는 이곳에서 얼마나 더 오래 머무를지 모르겠지만(아마도 평생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곳에 있는 한 다양한 것들을 더 마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도 저도 아니어서 애매모호할지라도, 조금 모자라고 부족할지라도 말이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