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위에서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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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회

어제 헬리콥터 뜨고 해경이 출동하고 야단났었는데 몰랐지. 도래뻘(뻘도 장소마다 고유 이름이 있다. 그 이름 중 하나)에 놀러 걸어 들어왔던 학생들 밀물에 갇혀서 다 죽을 뻔했었는데. 물이 한참 밀었는데도 걸어 나가지 않고 딴짓하더라고. 건너 뻘에 댔던 우리 배가 뜨고 한참 지났는데도 물이 차오르지 않은 높은 뻘 언덕만 믿고 서둘지 않더니……. 물 힘 약한 쪽사리라 살았지 다른 때 같았으면 해경들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었어. 엉뚱한 죽건여(여의 고유 이름) 근처에서 해경들 열댓 명하고 수륙양용 보트가 왔다 갔다 하더라고. 아마 일일구에 신고하면서 무엇이 보이냐고 하니까 물고랑 건 편에 바위가 보인다고 했겠지. 뻘 한가운데 그거 빼놓고 다른 이정표가 있나 뭐. 참나, 물골로 물이 돌아 에워싸이는 것도 모르고.

숭어잡이 배를 타고 그물 터로 가는 길에 선장이 어제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평생 조개를 잡아온 할머니들도 물에 에워싸여 죽기도 하는 곳이 뻘길 아닌가. 물이 밀려들어오는 양과 시간과 속도가 365일 달라 뻘길은 위험하다. 물이 다 난 다음 사람들 발자국을 따라 뻘길을 걸어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물이 다시 밀려들어와 발자국이 지워지고 길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영을 잘해 만나는 물고랑을 헤엄쳐 건넌다 해도 걷기 수월한 뻘길이 아닌 무릎까지 빠지는 뻘밭으로 한 시간을 걸어 나가야 한다. 힘이 세고 경험이 많은 사람도 탈진해버리기 십상이다. 어제 네 명의 젊은 친구들이 물에 고립되었던 것은 뻘길의 위험성을 몰랐거나 어설피 알아서였을 것이다. 아예, 뻘에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한 시간을 걸어 물끝 감뻘까지 따라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 시도했더라도 힘을 쓰다가 되돌아나갈 생각에 빨리 포기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어설피 안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는 상념에 젖어 있다. 나는 뻘체험 나온 아이들을 보며 썼던, ‘맘껏 더럽혀도 된다. 이따가 뻘놀이 끝나고 샤워하면 되니까. 유치원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뻘밭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을 보며라는 긴 부제가 붙은 시 한 편을 떠올린다.

 

아이들아 뻘이 너희들 몸을 더럽히는 게 아니란다

비누향과 베이비로션에 찌든 얼굴

소음에 절은 귀

전자파에 삭아가는 뇌

 

아이들아 뻘밭에서 뒹굴어라

알록달록한 옷 빛깔 어서 버리고

수돗물에 탈색된 희끄무레한 피부 사리지 말고

아이들아 뻘밭에서 뒹굴어라

 

뻘 냄새에 합성세제 향이 씻기고

뻘 찔꺽이는 소리에 귀가 헹구어지고

뻘 말캉말캉한 감촉에

각지고 딱딱한 건물들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학원으로 가는 아스팔트길이 지워질 때까지

 

아이들아 흙을 입어보아라

흙으로 네 몸을 씻어보아라

샤워는 길 위 상가에서 하는 게 아니라

미끈미끈한 뻘로 뻘밭에서 하는 것이다

아이들아 선생님이

눈만 빼놓고 온몸에 입었던

이빨만 흰 나무토막 같던

너희들 몸을 물로 씻어주어도

씻지 말거라

뻘의 촉감

 

아이들아 겉에 묻은 뻘은 씻어도

웃음손가락으로 서로에게 입혀주던

마음속 뻘옷 한 벌

벗지 말고

꼭 챙겨가거라.

 

위의 시는 내가 뻘을 어설피 알았을 때 아이들이 뻘에서 노는 것을, 문명과 자연을 단순하게 대비시켜 예찬한 시다. 그런데 그 후 뻘에 관심을 갖고 오래 살면서 체험이란 이름으로 죄 없는 아이들이 뻘을 죽이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반성한다, 내 깊이 없는 어설픈 맘으로 쓴 시가 뻘을 죽여보라고 부추겼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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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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